‘엄마의 품’을 찾아 떠나는 길-파리, 텍사스 (Paris, Texas, 1984, 감독: 빔 벤더스)

서 기찬

kcsuh63@hanstar.net | 2014-03-12 09: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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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시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시 ‘가지 않은 길’은 길을 인생에 비유합니다.
프로스트는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삶의 방식을 겸손한 마음으로 그립니다.
두 갈래 길 중 한 길을 선택하면서 이렇게 마무리 짓습니다.

(중략)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에선가
한숨을 쉬며 이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갈라져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것으로 해서 모든 것이 달라졌더라고.



파리, 텍사스 캡쳐


여기 한 남자, 트레비스(해리 딘 스탠튼)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황량하고 거친 땅입니다. 멕시코와 경계를 이루는 미국 텍사스주 사막에 한 남자가 세상 모든 시름과 번뇌를 홀로 안은 채 터벅터벅 걸어갑니다. 고되고 험난한 길을 걸어온 듯이 보이지만 앞으로의 여정도 만만치 않음을 시사합니다. 황토색과 갈색의 거친 사막과 낡아 빠진 검붉은 양복으로 그려진 화면에 유독 눈에 띄는 강렬한 색깔이 보입니다. 빨간 모자와 파란 물통뚜껑! 짧은 순간이지만 왠지 조화롭지 못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원색은 마치 주인공이 사회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존재임을 암시합니다. 감독의 의도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
결국 트레비스는 의식을 잃고 쓰러집니다. 트레비스의 소지품에서 나온 유일한 연락처는 LA에 사는 동생입니다. 결국 동생과 함께 동생 부부 집으로 함께 갑니다. 동생 집엔 트레비스의 8살 난 아들이 동생부부를 부모로 알고 함께 살고 있습니다. 트레비스의 아내 제인(나스타샤 킨스키)이 4년 전 도망치며 아들을 시동생부부에게 맡긴 겁니다. 18살 어린 나이에 트레비스와 결혼 한 제인의 행복은 순간이었습니다. 남편의 과도한 집착과 의처증에 절망하고 반발하여 어린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갔던 것입니다.
동생네 집에 온 트레비스는 4년 만에 아들 헌터를 만나 어색한 부자의 정을 나눕니다. 그리고 아들 헌터와 아내 제인을 찾아 나섭니다.

트레비스는 세 번의 길을 떠납니다.
첫 장면에서 홀로 떠나는 첫 번째의 길.
동생을 만나 동생네 집으로 가는 두 번째 길.
아들과 함께 아내 제인을 찾아 나서는 길.

러닝타임 145분, 영상은 고요한 강물이 흐르듯 시간 순으로 잔잔하게 흘러갑니다. 몰입해서 보시지 않으면 자칫 지루하거나 졸릴 수도 있습니다. 할리우드 식의 애절한 사랑이나 과도한 액션, 양념 같은 코믹은 눈 뜨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다만 트레비스의 여정을 따라가며 사색의 시간을 제공합니다. 겉으로만 보면 영화는 한 남자의 여정입니다. 해체된 가족을 찾아 사랑을 확인하려는. 집 나간 아내와 아들을 찾아 나서다 쓰러지고 결국 차례로 만납니다. 전형적인 로드무비입니다. 아들을 먼저 만나고, 그 다음 아내를 찾아 나섭니다. 헤어진 가족의 재회, 소통입니다. 삼촌부부의 아들로 산 7살 난 헌터는 4년 만에 만난 아빠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엄마 제인을 매개로 해서 부자간의 정을 회복합니다.

파리, 텍사스 캡쳐


영화 ‘파리, 텍사스’의 가장 극적인 순간은 트레비스가 아내를 만나는 핍쇼룸(peep show room) 씬입니다.
핍쇼룸 이란 걸 아십니까? 남자 쪽에서만 여자를 볼 수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보면서 자기의 고민도 이야기 하고 성적인 해소도 하는 성인업소의 한 형태입니다. 세계가 인정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비주류인 김기덕 감독, 그의 영화 '나쁜 남자'에서도 한기(조재현)가 유리벽 너머의 선화(서원)의 방을 훔쳐봅니다. 사랑하는 여자의 사생활을 엿보는 ‘나쁜 남자’의 전형입니다. 트레비스는 핍쇼룸에서 자기의 사랑, 결혼, 아내 이야기를 합니다. 차마 아내를 정면으로 볼 수 없어 등지고 앉아 자신과 아내의 지난 시절 이야기를 하나씩 고백합니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듣던 아내 제인은 결국 상대편이 죽은 줄 알았던 남편 (제인이 아들과 도망칠 때 집에 불이 납니다. 남편이 죽은 줄 알지요.) 트레비스라는 걸 깨닫습니다.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짓습니다. 트레비스는 아들과 아내를 차례로 만나고 둘의 재회를 확인합니다. 그리고 트래비스는 다시 떠납니다. 첫 번째 여정이 계속 이어지는 길입니다. 첫 번째 여정의 목적지는 영화 제목인 ‘파리, 텍사스’입니다.
왜 영화 제목이 '파리, 텍사스'일까요?
줄거리를 보시면 텍사스는 이해되는데 '파리'는 뭘까요? 영화에서 파리는 엽서 속 사진 한 장으로만 나옵니다. 파리는 화려한 문화와 예술의 도시 프랑스 파리가 아닙니다. 텍사스의 작고 볼품없는 마을입니다. 영어 표기가 Paris로 똑같습니다. 텍사스에 사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작은 마을입니다. 트레비스가 보물처럼 가지고 다니는 엽서 속 사진은 그 작은 마을 파리의 공터입니다. 트레비스의 엄마와 아버지가 사랑을 나눴던 곳입니다. 기억상실과 실어증에 걸려 사막에 쓰러진 트레비스가 동생과 함께 LA로 오면서 말 한마디 않다가 처음 꺼낸 단어는 '파리'였습니다. 파리는 어떻게 가야하는 지 묻습니다. 트레비스가 찾은 것은 아내와 아들이지만 찾고 싶은 것은 '파리', 즉 엄마의 품입니다. 자신이 잉태되었던 곳입니다. 첫 번째 여정의 목적지는 텍사스의 작은 마을 파리, 어머님의 품입니다. 아들과 아내를 만나게 하고 다시 떠나는 이유입니다.
오프닝부터 영화를 보듬는 스산하고 황량한 라이쿠더의 음악, 어쿠스틱 기타 소리는 이 영화를 느끼는 또 하나의 재미입니다. 스물 세살의 나스타샤 킨스키의 숨막히는 아름다움을 보는 기쁨은 작은 덤입니다. '테스(1979)'에서 그녀의 청순한 아름다움에 빠졌다면 이 작품에선 외롭고 우울한, 그러면서도 섹시한 아름다움에 몰입하게 될 것입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영국 아카데미 감독상, 비평가협회 작품상에 빛나는 작품입니다

* 팁1) 사색과 삶의 깊이에 천착하는 빔 벤더스 감독의 다른 작품 '베를린 천사의 시'와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도 강추합니다.
* 팁2) 나스타샤 킨스키의 매력에 좀더 빠지고 싶다면 '테스 ‘Tess (1979)' '마리아스 러버 Maria's Lovers (1984)' '사랑의 아픔 Maladie D'Amour (1987)' '원 나잇 스탠드 One Night Stand (1997)’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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