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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Poulet aux prunes, Chicken with Plums, 2011, 감독: 마르얀 사트라피, 빈센트 파로노드)
사랑은 한 순간의 꿈이라고
남들은 웃으면서 말을 해도
내 마음 모두 바친 그대
그 누가 뭐라 해도 더욱 더 사랑해.
송창식, 윤형주의 트윈폴리오가 1981년 발표한 노래 ‘더욱 더 사랑해’ 첫 소절입니다.
사랑은 ‘한 순간의 꿈’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첫사랑은 또 어떻습니까?
첫사랑이란 말을 들으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까?
제 첫사랑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 축제에서 만난 눈이 큰 아이였습니다. 짧은 커트 머리에 유난히 흰 피부를 가진 소녀는 카키색 걸 스카우트 단복이 참 잘 어울렸습니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서 더 애틋하고 아름답다고 합니다.
여기 첫사랑의 여인을 평생 잊지 못하고 가슴않이 하다가 삶을 마감한 바이올리니스트가 있습니다. 영화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은 2011년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된 프랑스, 독일, 벨기에 합작영화입니다. 국내 개봉은 작년 6월에 했습니다. 원작은 이란 출신 마르얀 샤트라피의 '자두 치킨'(영화 원제목)이라는 만화인데 이 영화의 공동감독입니다. 여자입니다.
1950년대 이란의 테헤란.
첫사랑에 실패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나세르(매티유 아맬릭)는 실연의 아픔을 가슴에 묻은 채 세계 순회공연을 떠납니다. 오랜 순회공연을 마치고 귀국한 나세르는 어느 덧 40대에 접어듭니다. 엄마의 성화로 어릴 때부터 자기를 짝사랑한 여자 파린 귀세와 애정 없는 결혼을 합니다. 가슴에는 첫사랑의 여인 이란(골쉬프테 파라하니)을 간직한 채. 첫사랑의 여인 이름은 ‘이란’입니다. 불어로 제작한 프랑스 영화지만 고국 이란을 생각하는 감독의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첫사랑의 여인을 잊지 못하는 나세르는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첫사랑 이란과 함께 했던 추억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바이올린 선율에 담습니다.
아내 처지에서 보면 기가 막히고 울화가 치미는 짓입니다. 바이올린만 켜면서 첫사랑을 생각하는 남편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날 부부싸움 도중 홧김에 남편의 생명과도 같은 바이올린을 내팽개칩니다. 나세르의 꿈과 첫사랑 추억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목표이자 희망이 좌절과 절망으로 변합니다.
부서진 바이올린에 허탈하고 분노한 나세르는 새 바이올린을 찾아 나섭니다. 그러나 세상 어떤 바이올린도 첫사랑 이란과의 추억이 담긴 음색을 흉내 낼 순 없습니다. 나세르는 원하는 바이올린을 찾아내지 못하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심합니다. 나세르는 매일매일 간절히 죽기를 바라고 마침내 8일째 세상을 떠납니다.
영화는 나세르가 죽기로 작정하고 죽을 때까지 8일간의 일상과 과거를 보여줍니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의 이야기는 자칫 우울하고 쓸쓸할 수도 있지만 영화는 한 편의 동화처럼 아기자기 하고 재밌습니다. 한 예술가의 비애를 만화적 상상력과 판타지로 포장하여 웃음을 선사합니다. 두 감독은 말합니다. “리얼리즘에는 관심 없습니다. 리얼리즘 그 너머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미국 개봉 당시 워싱턴 포스트는 “기발함의 향연! 즐거우면서도 슬프다.”고 평가했습니다.
자살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나세르는 철로에 눕거나 언덕에서 투신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총을 사용하는 것도 검토하지만 모두 아파서 못하겠다고 포기하고 그냥 침대에 누워서 아무것도 안하고 굶어 죽기로 작정합니다. 영화 ‘델리카트슨 사람들(1991, 감독: 장 피에르 주네, 마르크 카로)’에서 매번 자살에 실패하는 여자가 떠오르는군요.
3일째 되는 날, 두 아이에게 ‘인생은 예술을 통해 이해해야 한다.’는 유언을 하며 자신의 죽음을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비교합니다. 이때 아들은 방귀를 뀌고 맙니다.
6일째 되는 날엔 저승사자가 죽기 전에 안면을 터야 한다고 방문합니다. 저승사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만화로 보여줍니다.
8일간의 현재와 과거가 서로 교차하면서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한 예술가의 삶을 조망합니다. 특히 어린 딸과 아들의 미래를 보여 주는 설정은 기발하고 독특합니다.
첫사랑을 만나기 전 바이올린 스승은 나세르에게 “너의 음악은 쓰레기”란 표현을 하면서 바이올린 선율에 기술만 있고 살아있는 영혼이 없다고 비난합니다. 이란을 만나 사랑하며 행복한 오감을 자극받은 나세르는 이별과 실연이란 고통을 통해 상처와 아픔도 함께 느낍니다. 사랑의 환희와 이별의 아픔이 함께 녹아있는 나세르의 연주에 감동한 스승은 당신의 스승에게서 받은 소중한 바이올린을 나세르에게 선물합니다. 이제 나세르의 바이올린에선 삶의 숨결과 한숨이 담겨있는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국내 개봉 당시 영화 포스터엔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삶은 곧 예술이고, 예술의 완성은 사람이다'
팁1) 원래 영화 제목 ‘자두치킨’은 주인공 나세르가 좋아하는 요리입니다. 나세르가 죽기로 작정한 4일째 되는 날 아내가 화해의 의사로 자두치킨을 만들어 주는데 나세르는 거절합니다.
팁2) 나세르 첫사랑의 여인, 이란 역을 연기한 배우는 골쉬프테 파라하니입니다. 1983년생으로 이란의 김태희라 불릴 정도로 미모와 지성을 고루 갖추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바디 오브 라이즈(2008, 감독:리들리 스콧)’에 출연하면서 이란 배우로는 처음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해 이름을 알렸고 세계적인 배우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아랍 여성의 비참한 생활과 한 여인의 숨겨진 욕망, 회한을 다룬 2012년 작품 ‘어떤 여인의 고백(감독: 아틱 라히미)’에서도 열연을 펼쳤습니다.
팁3) 나세르 엄마로 이사벨라 로셀리니가 나옵니다. '화장품 랑콤의 여인'기억하십니까? 네오리얼리즘 감독 로베르트 로셀리니와 지성미의 대명사 잉그리드 버그만의 딸입니다. 1952년생이니 벌써 60세가 훌쩍 넘었습니다. 1983년 감독 마틴 스콜세지와 이혼한 그녀는 발레 스타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와 사귀며, 그와 함께 영화 '백야(1985, 감독:테일러 핵포드)'에 출연합니다. 이사벨라 로셀리니는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영화 ‘블루 벨벳(1986)’으로 할리우드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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