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찬
kcsuh63@naver.com | 2016-06-20 08:48:16
[그 영화, 명대사] (54)
“우린 각자의 덫에 걸려 있어요. 아무도 그 덫에서 벗어날 수는 없죠. 아무리 발버둥치고 기를 써 봐도 모두 헛수고예요. 가끔 우린 알면서도 덫에 걸리는 수가 있습니다”
- '싸이코( Psycho, 1960,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중에서.
바깥세상과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엄마와 아들, 노먼(앤서니 퍼킨스)이 있습니다. 물론 어머니는 아들을 사랑하고 아들은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외부와의 단절로 불완전하고 아슬아슬 합니다. 이 모자가 운영하는 모텔에 공금을 횡령한 한 여자, 마리온(자넷 리)이 찾아 옵니다 그리고 곧 그 여자는 노먼의 어머니에게 무참히 살해당합니다.
‘영화사상 가장 놀랄만한 극적인 반전’으로 유명한 작품 '싸이코'는 이제 후대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각색, 변용해서 채용했기 때문에 현재의 시각에선 신선한 느낌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개봉 당시에는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소개한 대사는 마리온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 노먼이 건네는 말입니다. 비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직감으로 노먼은 마리온이 무언가를 숨기고 초조해 함을 느낍니다. 둘의 비밀은 물론 해결 방법에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마리온은 돈만 돌려주면 쉽게 문제에서 벗어나지만 노먼의 비밀은 쉽게 해결할 수 없습니다. 노먼의 대사를 통해 그의 처지와 현실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노먼의 정신과 육체는 어머니에게 붙잡혀 꼼짝 못하는 상황에 빠져 있으며 늘 감시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먼은 마리온과 대화를 하고 싶어도 그녀의 방에 감히 들어가지 못합니다. 공적인 장소인 사무실에서만 이야기 하지요. 자신 안에 존재하는 어머니의 질투심이 마리온과의 사적 관계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질투와 시기로 가득 찬 노먼 안에 존재하는 어머니는 새로운 여자가 나타난 게 달갑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걸 제거할 방법은 마리온을 죽이는 것입니다. 마리온을 죽이는 이는, 엄마의 영혼을 가진 노먼입니다.
한편, 마리온이 살해되는 욕실 장면 역시 영화사에 기록될 충격적인 명장면입니다. 히치콕 감독이 이 장면 때문에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다고 할 만큼 매력적인 장면으로 7일 동안 무려 70여 회나 카메라 위치를 바꿔가면서 공들여 촬영했다고 합니다. 여체의 은밀한 부분은 아슬아슬하게 나오지 않고, 능숙한 몽타주로 잔인성과 에로티시즘을 표현하였습니다. 당시 극장에서 이 장면을 보고 졸도하는 관객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45초 동안 78개의 컷으로 긴박하게 묘사된 이 욕실 장면에서 실제로 칼에 찔리는 장면은 나오지도 않습니다. 또 욕실에 흐르는 피도 양이 너무 적습니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배경음과 칼에 찔리는 소리(멜론 찌르는 소리를 효과음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가 공포를 극대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히치콕은 ‘싸이코’의 성공 요인 중 1/3은 음악 덕분이었다며 음악감독 버나드 허먼에게 2배 인상된 금액을 지불했다고 합니다. 히치콕은 붉은 피를 보이기 싫어서 이 영화를 흑백으로 찍었다고 하는데 사실 흑백으로 촬영한 더 큰 이유는 비용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히치콕은 당시 8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서 4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히치콕은 ‘싸이코’의 원작자 로버트 블록으로부터 단돈 9천 달러에 판권을 사들였고 엔딩의 비밀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출판된 소설 ‘싸이코’를 보이는 족족 사들였다고 합니다. 자기 영화에 꼭 한 컷씩 등장하길 좋아하는 히치콕은 영화 초반부에 자넷 리가 사무실에 출근하는 장면에서 창밖에 카우보이모자를 쓴 남자로 카메오 출연합니다.
재밌는 뒷이야기 중 또 하나는 할리우드 영화에선 주인공이 절대 죽지 않는다는 통념을 깨고 영화의 절반쯤 되는 시점에 여주인공 마리온이 살해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당시 영화가 개봉됐을 때 일단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뒤늦게 들어온 관객들이 주인공인 그녀가 언제 나타날까 목을 빼고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히치콕 영화에는 언제나 히치콕다운 맛이 있습니다. 그는 서스펜스 영화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수많은 효과적인 아이디어를 개발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맥거핀 효과(Macguffin)인데, 관객들이 줄거리 전개를 예상할 때 계속 틀리게 하는 히치콕의 속임수 장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반전의 달인'답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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