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대사] "여기 머물면 안돼요?"- 영화 '리스본행...'

서기찬

kcsuh63@naver.com | 2016-07-24 11:53:48

[그 영화, 명대사] (56)


“그냥, 여기 머물면 안 돼요?”
-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Nachtzug nach Lissabon, Night Train to Lisbon, 2013, 감독: 빌 어거스트) 중에서.



2000년대 초반 스위스 베른, 대학에서 고전문헌학을 가르치는 학자 그레고리우스(제레미 아이언스)의 삶은 늘 똑같습니다.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책을 읽고 연구를 하고 가끔 혼자서 체스를 즐기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 반복되는 그의 일상은 함께 사는 사람에게는 때론 지루하고 건조하고 따분한 일입니다. 스스로도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사람인 것을 자책하며 5년 전 아내가 떠난 것도 그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1960~70년대 포르투갈 리스본, 40년 살라자르 독재정권 속에서 판사의 아들로 태어난 것에 반감을 가지며 성장한 의사 아마데우 프라두(잭 휴스턴)의 삶은 변화무쌍합니다. 친구들과 반독재 결사조직을 결성, 혁명을 주도하다 친구의 여자와 사랑에 빠져 사랑의 도피도 하게 됩니다. 열정적인 삶을 사는 그는 틈틈이 혁명에 대한 생각과 자신의 삶에 대한 글을 모아 <언어의 연금술사>란 책을 발간하게 됩니다. 그는 독재의 종식을 고하는 카네이션 혁명(1974)이 일어난 해 병으로 사망합니다.


영화는 살아있는 그레고리우스가 죽은 아마데우의 책 <언어의 연금술사>를 통해 아마데우의 격정적이고 역동적인 삶을 동경하며 자신의 무미건조한 삶을 반추하게 되는 이야깁니다. 스위스 출신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가 2004년 발표한 소설이 원작입니다.


그레고리우스와 아마데우를 연결하는 끈은 그레고리우스가 출근길에 우연히 만난 한 여인입니다. 다리 위 난간에서 자살하려는 여인을 마주한 그레고리우스는 그녀를 설득해 학교로 데리고 오지만 그녀는 붉은 외투를 남겨놓고 달아납니다. 여인의 외투 속엔 아마데우의 책 <언어의 연금술사>가 들어 있었고 책 속에는 그날 출발하는 리스본행 야간열차 편도 티켓이 끼워져 있었습니다. 우연히 만난 여인과 책, 그리고 리스본행 열차 티켓이 그레고리우스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아마데우의 삶 속으로 들어가게 만든 것입니다.


‘나는 출근길에 우연히 자살을 시도하는 여인을 만난다면 막을 수 있을까’
‘나는 그녀를 설득해 내가 일하는 곳으로 데리고 올 수 있을까’
‘나는 리스본행, 아니 부산행 티겟을 보고 현실을 생각지 않고 바로 탈 수 있을까’


<언어의 연금술사>에는 ‘우연’에 관한 이런 글이 나옵니다. “인생의 진정한 감독은 우연이다” 우연으로 인해 그레고리우스는 타인의 삶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충동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지요.


리스본에서 아마데우의 행적을 쫓던 그레고리우스는 낯선 길에서 자전거와 부딪혀 넘어져 안경이 깨집니다. 새로운 안경을 맞추기 위해 들린 안경점에서 만난 안경사 마리아나는 아마데우 삶의 행로를 추적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한편, 그레고리우스의 깨진 안경은 영화의 중요한 기호로 작용합니다. 평범하고 고요한 일상을 살았던 스위스 베른에서부터 쓰고 있던 안경이 리스본에서 깨진 것입니다. 아마데우의 책과 주변인물을 통해 알게 된 아마데우의 혁명적이면서도 의욕적이며 정열적인 인생은 새로 맞춘 안경을 통해서 보고 인식하게 됩니다. 그레고리우스 삶의 변화를 예감할 수 있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아마데우의 삶을 따라가다 가끔 마리아나와 함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십니다. 서로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도 하지요. 위에 소개한 대사는 리스본을 떠나는 그레고리우스를 배웅하기 위해 기차역까지 따라나선 마리아나가 그레고리우스에게 툭 던진 말입니다.


그레고리우스의 선택은?


영화는 아마데우의 책 <언어의 연금술사>에서 인용한 주옥같은 명대사가 많이 나옵니다. 그 중 가장 제 마음에 드는 대사 몇 개를 소개합니다.
“독재가 현실이면 혁명은 의무다”
“인생이란 우리 자신을 위한 여행이다”
“어릴 적에는 마치 우리가 불멸인양 살아간다. 불멸의 지식이 우리 주위에 춤춘다. 간신히 우리 피부에 닿는 찢어지기 쉬운 종이 리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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