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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행 제로(No Manners, 2002, 감독: 조근식)’
중필: “아침에는 책을 보고 교양을 먹어야지, X새끼들이 도시락이나 까 처먹고 앉아 있구.
그리고 오늘 토요일인데 도시락은 왜 싸와~ 씨~”
친구: 오 오 ...오늘 금요일인데...
중필: “금...금요일 맞아? 아~ X발 도시락 안 싸왔는데... 니들 오늘 밥 먹지마, X발”
영화 초반부터 찰지게 입에 쩍쩍 붙는 중필의 욕이 정겹습니다.
-빈틈없는 카리스마, 문덕고 ‘캡짱’ 중필 역의 류승범
- 내숭 9단, ‘얼짱 범생 당돌녀’ 민희 역의 임은경
- ‘깡생깡사 의리걸’, ‘오공주파 짱’ 나영 역의 공효진
1980년대 ‘질풍노도의 시기’ ‘주변인’으로 사는 청소년들의 사랑과 우정, 금지된 장난, 일탈의 순간을 96분간 보여주는 유쾌 상쾌 통쾌한 청춘일기 ‘품행 제로’입니다.
동네 미용실 외아들인 문덕고 짱 박중필.
공부와는 담 쌓고 예의는 예전에 고물상에 팔아먹은 양아치입니다. 게다가 1년 유급해 동기들보다 한 살 많습니다. 중필은 지각은 해도 학교는 꼭 갑니다. 중필은 학교 옥상이며, 비밀 아지트, 롤러 스케이트장 등 자기가 돌보고 관리해야 곳이 많습니다. 넘버 2인 수동(봉태규)은 야한 만화를 그려 중필과 함께 애들 돈을 뺏기도 합니다. 중필은 학교 짱으로서 학교 주변의 치안(?)을 관리합니다. 이웃 학교 아이들이 자기네 동네 학생 삥을 뜯는 것(돈을 뺏는 것의 은어)은 또 죽어도 못 봅니다. 영화 도입부 인근 학교 태권도부원들과 혼자서 격투를 벌이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그때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브이’음악은 80년대로 향수 여행의 출발입니다.
‘생날라리’ 중필에게도 첫사랑의 화살이 꽂힙니다. 엄마가 운영하는 미용실에서 처음 만난 근처 여학교 민희에게 마음을 뺏겨버리지요. 머리를 손질하는 엄마 뒤에서 민희를 힐끔힐끔 몰래 훔쳐보는 중필, 류승범의 눈빛 연기는 일품입니다. 민희를 만나기 위해 민희가 다니는 기타교습소에 등록을 하고 민희와 함께 난생처음 도서관도 다닙니다. 중필을 짝사랑하던 민희네 학교 짱 나영은 갑자기 나타난 연적, 민희에게 온갖 공갈 협박을 하지만 민희의 당돌함에 놀랍니다. 정란여고 최고의 모범생과 날라리가 중필을 동시에 좋아하게 된 것입니다.
한편 전학생 상만(김광일)은 동네 주먹세계를 단숨에 평정하고 문덕고 짱까지 노립니다. 상만이 무리에게 일격을 당한 나영의 오공주파 소식에 중필은 상만과의 결투를 결심합니다. 문덕고 캡짱으로서 확인을 받고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섭니다.
영화는 1980년대를 회상하는 영화입니다. 줄거리도 단순합니다. 학교 짱 중필의 첫사랑과 짱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80년대의 추억을 곱씹게 해주는 그림은 절로 미소 짓게 하고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고등학교 교련 수업, 이소룡 흉내내는 중필, 롤러 스케이장에서 신청곡 받는 DJ, 오후 6시면 나오는 국기 하강식 음악, 월요일 지겨운 운동장 조회, 교실에서 동전 노름(일명 짤짤이), 가수 김승진의 ‘스잔’과 맞수 박혜성의 ‘경아’... 특히 친구들과 서울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야동테이프를 몰래 사는 장면은 7080 세대 남성분들이라면 무척 공감하실 것입니다. 긴장되고 흥분된 마음으로 테이프를 켜는 순간, 헐! 최불암, 김혜자의 드라마 ‘전원일기’가 나옵니다. ㅋㅋ
무엇보다 빈약한 스토리와 다소 유치한 전개나 편집에도 이 영화가 매력을 끄는 것은 류승범이란 젊은 배우 때문입니다. 1980년 생으로 당시 스물 두 살인 류승범은 데뷔한 지 2년밖에 안된 새내기 연기자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중필의 양아치, 날라리 연기는 너무나 자연스러워 실제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결코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개성 있는 외모에서 쏟아져 나오는 ‘X새끼’ ‘X발’ ‘X같네’ 란 욕이 밉지 않게 들립니다. 특히 흥분하거나 화가 났을 때 류승범의 연기는 진짜 분노한 것처럼 수없이 욕을 내뱉고 악을 쓰며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실제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에이, X발’ 등 능숙하게 욕을 내뱉진 않는지요.
영화 전반을 통해 수천 번도 더 나오는 욕은 우리도 그 시절, 그 나이에 아주 입에 붙는 욕이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쓰긴 하지만....
기타교습소에서 배운 민희가 좋아하는 노래 김승진의 ‘스잔’을 집에서 혼자 연습하던 중필이가 노래가 잘 안되자 기타를 내동댕이치면서 또 한 마디 합니다.
“아이, X발 노래 참 X같네”
귀에 거슬릴 만 한 욕이지만 듣는 귀보다 가슴으로 공감되는 이유는 아마 류승범의 맛깔스런 연기 때문이 아닐 런지요.
당시 류승범의 실제 연인인 동갑내기 공효진의 연기도 무난했습니다. 독하고 거친 성격이지만 중필에 대한 사랑은 일편단심인 여고 짱 역을 예쁘게 소화했습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 감독: 장선우)’으로 데뷔해 뻣뻣한 발연기를 보여줬던 임은경도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살짝, 아주 살짝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중필과의 첫 키스 장면에서 안경과 손수건을 꼭 쥐는 미세한 연기는 설사 그것이 감독의 지시였을망정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1980년대 학창시절을 조명하고 싶었습니다. 범생이와 노는 애 이야기, 그들의 청춘과 사랑을 재현했습니다” 조근식 감독 연출의 변입니다.
류승범은 당시 임은경과 키스신을 찍고 나서 두 여자에게 미안해했답니다. 우선 당시 연인이었던 공효진에 미안했고 상대역인 임은경(당시 18세)에게도 무척 미안해했습니다. 이유는 본의 아니게 임은경의 첫 남자(첫 키스)가 돼 버렸기 때문이랍니다.
1970~80년대를 돌아보고 감상에 젖게하는 영화 ‘친구(2001, 감독: 곽경택)’ ‘말죽거리 잔혹사(2004, 감독: 유하)’처럼 ‘품행 제로’ 역시 추억의 코드가 매력적입니다. 당시 10대 청소년들은 지금의 학생들보다 더 엄격하고 틀에 갇힌 생활을 했습니다. 그 만큼 반작용, 즉 일탈과 욕망도 컸었지요. 마치 금지된 장난처럼. 영화 마지막 부분, 중필이는 민희가 사준 옷을 입고 문덕고 짱을 가리는 상만과 원터치(1대1 대결이란 뜻의 은어)를 벌입니다. 민희는 중필한테 자기 학교 축제 때 기타 연주를 하니 응원오라고 합니다. 같은 시간 중필과 상만은 처절하고 절박한 싸움을 합니다. 이유는 단 하나 문덕고 짱을 가리는 것. 이때 배경음악으로 민희가 연주하는 기타곡이 흘러나옵니다.
‘로망스(Romance)', 영화 ‘금지된 장난(Jeux Interdits, Forbidden Games, 1952)’ 주제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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