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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언제 어디서 처음 생겨났는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나는 안다 너의 뿌리를
하늘과 땅 음양의 정기인 물을 어미로 불을 아비로 너는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래서 이름도 술이 되었으리
인간의 그 오랜 역사를 너를 빼고 얘기할 순 없다 너로 하여 즐거움도 많았겠지만 너로 인해 또 얼마나 망가졌을까?
그게 어찌 네 탓이겠는가? 네 고귀한 성품을 알지 못하고 너와 제대로 친구하지 못하는 딱한 인간들의 부덕의 소치일 뿐
술에 정해진 양이 따로 있으랴? 그저 자신의 기호와 능력에 따라 때론 주어진 상황과 분위기에 맞춰 즐겁게 마시고 멋지게 취하면 되는 것
그래 술은 취하자고 마시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물이나 차를 마셔라 취한다는 것은 난잡해지는 게 아니다 그대로를 느끼고 서로 솔직해지는 거다
2014. 11. 23 소산
ㅇ 唯酒無量 不及亂 (『論語』 鄕黨) 유주무량 불급란 (『논어』 향당)
오직 술은 정해진 양이 없으나, 난잡한데 까지 이르지는 않느니라.
***** 요즘 연말이다 보니 송년회니 뭐니 해서 술을 마시는 자리가 많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술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이는 술에 대한 공자의 말씀이다.동서양의 수많은 현자들이 술에 대해 한 마디씩 했지만 나는 이것이 가장 좋은 말인 동시에 가장 지키기 어려운 말이라고 생각한다.다른 음식에 대해서는 일일이 양을 정해 놓고 알맞게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 공자가 유독 술만은 정해진 양이 없다고 했다. 왜 그랬을까? 술은 주식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술이란 그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고 대화를 원활하게 이끄는 촉매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한 잔을 마시고도 좋은 대화를 나눌 수도 있는가 하면 정말 좋은 친구를 만나거나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때는 한 병 아니 그 이상도 마실 수 있다는 뜻일 게다.
핵심은 ‘불급란’(不及亂)에 있다. '난잡한데 이르지 않는다'는 말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여러분은 술을 마시는 목적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가? 그것은 당연히 취(醉)하는데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취’(醉)한다는 것과 ‘란’(亂)하다는 것 즉 ‘난잡하다는 것’의 의미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취한다’는 말은 아주 멋진 말이다. 이는 이성적이고 분별적인 사고를 잠시 접어두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느낄 수 있는 감성적이고 포용적인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서로의 장벽을 허물고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으며 인간 존재로서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술에만 취하는 것이 아니다. 음악이나 운동에 취하기도 하고 묵향(墨香)이나 산수(山水)에 취하기도 하며, 또는 어떤 사상에 취하기도 한다. 그것을 우리는 ‘도취(陶醉)’ 또는 ‘심취(心醉)’한다고 말한다. 술을 잘 못 마시는 분들도 얼마든지 즐기면서 멋지게 취할 수 있는 것이다.'唯酒無量(유주무량)이나 不及亂(불급난)이니라' '오직 술은 정해진 양이 없으나, 난잡한데 까지 이르지는 않는다'는 공자의 말씀을 꼭 기억하기 바란다. 술을 잘 마신는다는 것은 결코 양에 달려 있지 않다. 술은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서로가 보다 솔직해지고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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