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톡] 국제시장 - 한 번쯤은 가슴으로 들어야 할 이야기

권상희 영화 칼럼니스트

cyberactor@naver.com | 2015-01-23 18:21:19

“내가 어렸을 때는 말이야.......”, “옛날에는 다들 어려워서...요즘 같지 않았어”
너무 자주 들어서 때로 듣기 싫은 잔소리처럼 여겨지는 부모님의 고정레퍼토리.
솔직히 지겨웠다. 케케묵은 옛날이야기, 이제는 그만하실 때도 됐는데...입가에 맴도는 말을 목넘김으로 삼켜버리고 얼굴은 듣는 척, 머리로는 딴 생각을 한다. 그랬다. 적어도 그 가난과 고통의 시간을 상상해 본 적도, 안타까운 심정으로 공감해 본 적도...단 한 번 없었다.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시간을 그렇게 무심하게 흘려 넘겼다. 남의 일인 듯 아무 상관없다고 치부하며.......

국제시장


영화 은 덕수(황정민)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의 아픈 현대사를 되짚어준다.
1950년대 625전쟁부터 60년대 파독 광부간호사, 70년대 베트남 전쟁 참전, 80년대 이산가족 찾기까지...국가의 역사는 덕수의 개인사와 궤적을 같이한다.
피난길에 헤어진 아버지(정진영)를 대신해 가장이라는 책임감으로 살아온 그의 삶의 이유는 온전히 “가족을 위해서” 그게 전부다. 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해 본적 없는 광부 일을 자원해 독일로 갔고, 철없는 동생 끝순이(김슬기)를 시집보내기 위해, 또 고모(라미란)가 운영하던 가게, 꽃분이네를 인수하기 위해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쟁 중인 베트남에 간다. 그리고 이산가족 찾기를 통해 전쟁 통에 잃어버린 동생 막순이(최 스텔라김)와 극적으로 상봉함으로서 어머니(장영남)의 평생 한을 풀어준다.

“당신 인생인데... 그 안에 왜 당신은 없냐구요”
모든 것을 팔자로 돌리는 덕수. 자신의 희생이 가족의 행복이라고 믿고 오롯이 그 삶에 순응하고 살아온, 아니 살아낸 인생. 아내 영자(김윤진)의 이 한마디는 그래서 참 아프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비로소 아버지에게 토해내듯 쏟아내는 이 말에는 그동안 참고 견디며 살아낸 덕수의 고통과 아픔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북받쳐 오르는 그의 감정에 동화되어 버리는 나 자신을 통제하기가 어려운 순간이다.





칼럼을 쓰는 입장에서 온전히 관객의 눈으로 영화를 보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고 봐야만 분석이 가능하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영화가 바로 이다.
작품은 거칠고 투박하다. 피난장면에서의 CG 이외에는 그렇다할 고도의 영화적 테크닉을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투박함이 이 영화에는 어울린다. 이는 1950년대에서 80년대까지의 시대적인 배경이나 덕수의 우직한 캐릭터를 한층 더 부각시켜 준다.
윤제균 감독은 관객의 코드를 분명하게 읽어낼 줄 아는 영민함을 가진 상업영화 연출자이다. 명대사는 거의 없지만 기억에 남을만한 장면들은 꽤 있다. 광부로 보내진 이들이 탄가루가 범벅인 채로 타국의 막장에서 간식을 먹는 장면이나, 헤어진 동생 막순이와 상봉하는 이산가족 찾기 장면은 어떠한 설명도 필요하지 않다. 가슴이 메어질 만큼 슬프고 또 슬프다. 또한 중간중간 웃음코드의 배치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파독 광부가 되기 위해 덕수가 면접을 보던 중 그를 시작으로 모든 사람들이 애국가를 부르는 장면이라든가, 영자가 베트남으로 가겠다는 덕수를 만류하는 장면에서 국기 하강식에 맞춰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은 당시 시대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꽤나 작위적이어서 보기에 불편하다.

그러나 은 작품성과는 별개로 칭찬해주고 싶은 영화다. 극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관객의 대부분은 60대를 훌쩍 넘기신 어르신들이다. 문화의 소외계층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그 세대들이 기꺼이 극장을 찾을 수 있는 작품이 있다는 건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다. 나의 옛날을 회상하며 덕수라는 인물에 동화되어 오랜만에 웃고 울며 마음껏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시간. 2015년, 옛날이야기는 완벽한 신파를 구현해내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누군가는 으로 이데올로기를 논한다. 또 누군가는 이제는 지겨운 이야기라며 작품자체를 폄하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덕수의 삶에서 좌파와 우파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건 정치색을 가진 자들이 그들의 논리로 풀어낸 해석일 뿐이다. 다만 그의 가족에 대한 희생이 질곡의 시대와 맞물려 있었을 따름이다.

영화를 보며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과연 내 인생에 내가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어쩌면 내 인생을 잊고 살아온 그들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기성세대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동안 그들의 옛 이야기를 듣기 싫은 생색내기 쯤으로 평가절하 했던 건 아닌지.......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부모님의 히스토리를 한 번쯤은 가슴으로 들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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