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즈 와이드 셧(Eyes Wide Shut) 욕망의 기이한 변주곡

권상희의 영화톡 수다톡 / 권상희 영화 칼럼니스트 / 2013-12-23 14:16:42

권 상희의“영화 톡(talk)수다 톡(talk)”



“파격적” 이라는 3음절의 단어는 곧잘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더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호기심을 발동시킨다는 표현이 적당할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파격적이길래?”



스탠리 큐브릭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은 인간의 욕망을 큐브릭 특유의 섬세함과 차가움으로 예리하게 파고든다. 영화는 선정성보다 누구나 그려보았을 욕망에 대한 솔직함이 훨씬 더 파격적으로 다가오는데, 아마도 그런 이유는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 “난 아니야” 라고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일게다.



그런 탓에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은 상상 속의 일탈을 마치 스크린을 통해 확인 한 것 같은 묘한 느낌마저 든다.





<아이즈 와이드 셧>



삶이 고달프거나 괴로울 때 욕망은 저 멀리에 있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을 떠올린다는 것 조차 사치일 뿐이기에……. 그런 이유라면 이 부부에게 안정된 생활은 오히려 독이 된 것 같다.



빌(톰 크루즈)과 앨리스(니콜 키드먼)- 이 두 사람은 뛰어난 외모와 경제력, 예쁜 딸까지 있는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감사”나 “행복”이란 단어와 연결되지는 않는 듯 하다.



때로 “안정” 이란 단어는 편안함을 넘어설 때 권태로움으로 변질된다.



앨리스는 이미 권태로웠던 걸까? 아니면 파티에서 있었던 남편 빌을 향한 젊은 여성들의 유혹을 질투했던 걸까?



그녀는 마리화나를 한 채, 그동안 내밀하게 숨겨놓았던 비밀을 꺼내어 놓는다.



“지난 여름 잠깐 스치듯 보았던 젊은 해군장교가 자신을 유혹했더라면 그를 위해서 가족을 모두 버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충격적인 고백.



발설한 순간 이제 더 이상 비밀이 될 수 없는 이야기는 빌에게 곧 망상이 되어버린다.



분노로 얼룩진 그가 선택한 것은 직접 유혹의 손길을 찾아 나서며 일탈을 감행하는 것. 하지만 그는 끝내 완전한 일탈에 성공하지는 못한다. 친구에 의해 집단 난교 파티가 열리는 곳까지 가게 되지만 그곳의 기이한 광경에 그저 구경꾼이 될 뿐이다.



가면과 망토를 쓰고 있는 사람들, 망토를 벗어 던진 순간 추한 욕망들이 꿈틀거린다.



그러나 가면 속 얼굴은 결코 공개되지 않는다. 권력과 욕망, 이 한 몸뚱이들은 그렇게 눈속임하듯 분리되어 있다.



결국 구경꾼 빌은 자신들의 신분이 들통날 것을 염려한 권력자들에 의해 그곳에서 추방당한다.



그들만의 리그에 그들끼리 공유하고 있는 비밀이 이방인에 의해 발설되는 순간, 권력은 위태로워지고 욕망은 멈추어야 하는 것이기에 더 이상 빌의 관음 행위를 용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파격적”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것 같은 집단난교장면은 생각처럼 그렇게 관능적이거나 에로틱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로테스크”란 단어가 더 잘 어울린다.



마치 욕망이 그 끝을 내달렸을 때의 느낌인 것만 같은.



욕망은 끝내 감추는 편이 나은걸까? 서로를 향한 같은 방향의 욕망이 아닌, 다른 이성을 향한 각자의 욕망은 그것을 드러내는 순간- 실제 상황이 아닌 상상일지언정- 상처가 될 수 밖에 없다.



빌은 잠들어있는 앨리스 옆에 놓여있는 가면을 보고는 고해성사에 가까운 고백을 하지만 앨리스의 고백을 들었던 빌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 역시 참담해진다.



어쩌면 혼자만의 비밀로 포장해두면 좋았을 것을 지나친 솔직함으로 발설하는 건 상대에 대한 배려를 망각한 불필요한 정직함이 아닐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가능한 한 빨리 그들이 해야 할 중요한 일, “Fuck(섹스)”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스크린은 암전된다.



큐브릭 감독은 열린 결말로 해석의 여지를 남겨놓았다. 영화의 제목이 의미하듯 “질끈 감은 눈”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것은 어쩌면 이전의 관계회복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 될 수도, 아니면 각자 다른 성적 욕망을 품었던 것에 대한 정리 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결말은 빌과 앨리스 부부의 앞날에 대한 예상보다 인간의 성적 욕망에 대한 각자의 의미부여를 위한 비워둠이 아닐까 싶다.



욕망, 이는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본능이리라. 그래서 무조건 부정할 수도, 모른 척 할 수도 없다. 하지만 두 눈을 크게 뜨고 그것을 쫓는 순간, 욕망은 채워지지 않고 이내 바닥을 드러내며 영원히 해갈되지 않을 갈증으로 변해버린다. 마치 그것의 노예가 된 것처럼.



야멸차게도 그게 바로 욕망의 속성이다.



혹여 내 머리가, 내 몸이 그것을 행해 내달리려고 할 때, 두 눈을 질끈 감아보자.



영화도, 현실에서의 삶도 무엇이 정답이라고 알려주지 않는다. 아니, 알려주지 못한다.



하지만 꽤 괜찮은 최선책 아닌가?



권상희-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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