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2003) - 봄빛을 닮은 그 이름...첫사랑

권상희의 영화톡 수다톡 / 권상희 영화 칼럼니스트 / 2014-04-07 14:26:55
골목 어귀에 핀 목련화를 보고 있으려니 아무 이유 없이 가슴이 설렌다.
거의 매년 반복되는 이 시기의 가슴앓이... 일찍 피는 꽃이라, 또 일찍 져버리는 꽃이라 아쉽고 또 아쉽다. 봄밤...가로등 불빛보다 더 환한 그 모습에 그리운 이에 대한 추억이 가슴 속에서 몽울몽울 피어오른다.
지금쯤 그는 뭘 하고 있을까? 날 기억해줄까???
저 꽃이 다 지기 전에 새로운 사랑을 해보자 다짐해보지만... 막연한 기대감이 주는 막막함은 어쩔 수 없다.
꿈꾸는 새 사랑과 과거의 얼굴이 아이보리 빛 꽃잎에 오버랩 된다.
마치 영화 <클래식>처럼......

클래식 클래식


오랜 시간 고이 간직해온 엄마의 연애편지를 보게 된 딸, 이루지 못한 엄마의 옛사랑과 현재진행형인 딸의 짝사랑,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사랑은 서로 다른 듯 닮아있다.
마치 소설 ‘소나기’를 연상시키는 듯 어린 시절 소녀 주희와 소년 준하의 풋풋하기만 했던 만남, 그리고 아쉬운 이별...
후에 친구 태수(이기우 분)의 부탁으로 연애편지를 대필해주던 준하(조승우 분)는 그 상대가 주희(손예진 분)임을 알고 놀라지만 이미 태수(이기우 분)는 주희의 집안에서 정해놓은 정혼상대...얽히고 설킨 인연이란 참으로 얄궂기만 하다.

친구 수경(이수인 분)이 좋아하는 연극부 선배 상민(조인성 분)을 짝사랑 하고 있는 지혜(손예진 분, 1인2역). 지혜는 수경의 부탁으로 상민에게 보낼 연애편지를 대필해준다.
친구의 이름으로 자신의 마음을 담아 쓴 편지, 그저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사랑... ‘짝사랑’ 이란 이름, 거기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슬픈 아픔이 오롯이 배어있다.
하지만 진심은 통한다고 했던가! 친구의 사랑이라 상민을 피하기만 하던 지혜는 마치 만나야만 될 인연이라도 되듯 그와 자주 마주친다.
세월을 거슬러...30여 년 전, 주희도 그 편지가 준하가 쓴 것임을 알게 되고...하지만 주희의 부모님은 자신들보다 집안이 좋지 않은 준하를 달가워 할 리 없다. 월남전 파병을 이별의 방법으로 택한 준하는 그렇게 주희와 헤어지게 된다.

만나야 할 인연이라면 어디서든, 그게 언제이든 다시 만나게 된다는 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운명법칙’인가 보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아름다운 주희, 하지만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준하는 보지 못한다.
“거의 완벽했는데, 해낼 수 있었는데...어제 밤에 미리 와서 연습 많이 했었거든.”
첫사랑, 이별, 재회...왜 이런 이름들엔 눈물이 흐르는지...마치 이 세상에 아픔 없는 사랑이란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주희를 위해 아무렇지 않은 듯 애써 담담한 척 하는 준하의 모습은 그래서 더 슬프고, 그래서 더 아프다.
‘운명’이란 이름은 긴 시간을 흘러, 한참을 고통스럽게 아픈 후에야 그렇게 찾아오는 가보다. 마치 환생이라도 한 것처럼 준하의 아들 상민과 주희의 딸 지혜는 이루어질 수 없었던 부모의 사랑을 대신하듯 예쁜 인연으로 완성된다.
부모세대의 가슴 아픈 새드엔딩은 자식들의 몫으로 남겨둔 해피엔딩을 위한 힘겨운 과정이었나 보다.

손예진이란 배우를 다시 보게 됐던 영화...
곽재용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였던 영화...
그리고 21세기에도 20세기 사랑의 모습이 여전히 관객들에게 통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영화...<클래식>

하지만 현실은 어느새 사랑이란 이름에 ‘순수함’이란 단어를 수식어로 쓰기엔 그것이 너무도 촌스러워졌다고 말한다.
그건 내가 사는 세상이, 주변 사람들이, 어쩌면 내가........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추억이 담겨진 손 편지도 사라지고, 고작 한줄의 문자메시지로 사랑이란 이름을 지워버리고마는 감성 상실의 시대.......그런 시대를 부정하면서도 그런 시대를 익숙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들.
그래서 영화 <클래식>의 순수함이, 애틋함이, 애잔함이 더 특별하게 와닿았던 것 같다.

첫사랑...누구나 마음속에 간직한 노스텔지어 목록 중 가장 첫 번째 것이 아닐까?
이 봄, 비밀상자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었던...너무도 오래되어 빛이 바래버린 그 이름을 살포시 꺼내어본다. 봄빛을 닮은 그 이름...첫사랑...그리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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