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이별, 그 끝은 달콤한 재회 - 첨밀밀

인터뷰&칼럼 / 서 기찬 / 2014-05-13 09:00:55


첨밀밀(甛蜜蜜, Comrades: Almost A Love Story, 1996, 감독:진가신)

첨밀밀

불교 경전에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 거자필반(去者必反):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만나면 언젠가 헤어지게 마련이고 또 헤어지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연이란, 운명이란, 사랑이란 그런 것입니다.

첨밀밀

홍콩에서 사랑과 이별
1986년 3월1일 상해, 홍콩행 기차에 무석 출신 소군(리밍)과 광주 출신 이교(장만위)가 탑니다. 둘의 첫 만남은 마주보고 인사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 등지고 앉아 서로의 고개를 의지하며 졸면서 시작합니다.
어리숙하고 순박한 청년 소군은 홍콩에서 성공하여 고향 무석에 있는 약혼녀 소정과 결혼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눈치가 빠르고 이재에 밝은 이교는 자본주의 사회 홍콩에서 돈을 많이 벌어 큰 집을 사는 게 목표입니다. 1980년대 중반 중국은 개혁, 개방 물결의 흐름 속에 젊은이들은 너도나도 ‘홍콩 드림’을 좇아 대륙을 벗어나려 합니다. 각자의 꿈을 안고 홍콩에 도착한 소군과 이교는 대만 최고의 가수 등려군(1953~1995)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 ‘첨밀밀’은 등려군의 노래 제목입니다. ‘꿀처럼 달콤한 사랑’이란 의미지만 영화는 마지막 장면의 달콤한 재회를 맛보기까지는 고단하고 힘든 여정, 안타깝고 애절한 이별을 반복합니다. 1980년대 중국이 개혁, 개방을 부르짖을 무렵 ‘중국의 낮은 늙은 등(등소평)이 지배하고, 밤은 젊은 등(등려군)이 지배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등려군은 대륙에서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외롭고 낯선 홍콩에서 두 사람은 처음 만나면서부터 서로에게 의지하는 친구가 되고 이내 곧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소군에게는 고향 무석에 결혼하기로 한 약혼녀 소정이 있고 이교에게는 사랑보다 돈을 많이 벌어 호화롭고 풍족한 생활을 하려는 꿈이 있습니다.
이교는 온갖 아르바이트와 장사를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으나 사업과 주식에 실패해 빚만 지게 됩니다. 소군은 이교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하지만 약혼녀가 있는 소군의 도움과 사랑은 이교에게는 부담스럽습니다. 결국 이교는 마사지사로 전락하게 되는데 마사지업소에서 홍콩 조직폭력배 보스 표와 인연을 맺게 되고 소군의 곁을 떠납니다.
1990년, 소군은 고향에 있는 약혼녀를 홍콩으로 데려와 결혼을 하고 이교는 표와 함께 결혼식에 참석합니다. 3년 만에 만난 소군과 이교는 각자 배우자를 두고도 서로를 향한 감정이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합니다. 이교는 표에게 소군과의 관계를 고백하기로 합니다. 그러나 경찰에 쫓기는 표를 따라 어쩔 수 없이 도피하게 된 이교는 다시 한 번 소군과 헤어지게 됩니다.

첨밀밀

뉴욕에서 재회
1995년, 표와 함께 도피생활을 하던 이교는 표가 부랑배들과 시비 끝에 목숨을 잃자 절망합니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관광가이드 일을 하며 어려운 생활을 이어갑니다. 겨우 중국으로 돌아갈 돈을 모아 비행기 티켓을 예약한 이교는 라디오에서 등려군의 사망 소식을 들은 뒤 쓸쓸히 뉴욕의 차이나타운 거리를 배회합니다. 무심코 걸어가던 이교는 한 가전제품 가게 앞에서 발걸음을 멈춥니다. 등려군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TV 프로그램을 무심코 바라봅니다.
한편 이교가 떠나고 사랑과 희망을 잃은 소군은 결국 소정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헤어집니다. 홍콩에서 함께 일했던 주방장이 있는 뉴욕으로 오게 되지요. 이발소에서 등려군의 사망 소식을 들은 소군은 우연히 길을 걷다가 가게에서 등려군에 관한 방송을 보게 됩니다.
이교와 소군은 나란히 서서 등려군 특집 방송을 한참 쳐다봅니다. 먼저 고개를 돌리는 이교, 서서히 쳐다보는 소군. 둘은 가만히 미소를 짓습니다. 등려군의 ‘첨밀밀’이 흐르고 오랜 이별은 마침표를 찍습니다.

첨밀밀

맥도널드와 등려군
1986년부터 1995년까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소군과 이교의 무대는 공산주의 사회 본토에서 자본주의 사회 홍콩과 뉴욕으로 옮겨집니다. 당시 중국의 개혁 개방, 홍콩의 본토 반환이란 역사적인 사건과도 함께 합니다. 홍콩과 뉴욕은 많은 중국인들의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하는 곳입니다. 대륙 출신 홍콩인들의 삶은 같은 중화권이면서도 언어도 다르고 생활과 감성도 많이 차이 납니다. 진가신 감독은 홍콩 영화 특유의 특별한 과장이나 작위적인 기법은 사양합니다. 그저 잔잔하고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홍콩 서민들의 생활에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소군과 이교가 처음 만나는 곳은 맥도널드 매장입니다. 이교는 아르바이트 점원으로, 소군은 난생처음 햄버거란 음식을 먹으러 들어온 손님으로 마주합니다. 맥도널드는 본토에서 온 젊은이들에겐 ‘자본주의’와 ‘홍콩 드림’의 상징입니다. 이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맥도널드에서 일을 하며 영어학원에서 청소를 하며 영어도 익힙니다.

첨밀밀

등려군의 노래는 영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두 남녀의 정서를 대신합니다. 만남과 헤어짐의 순간마다 흐릅니다.
홍콩에서 첫 이별 후 서로 배우자가 있는 가운데 재회한 소군과 이교가 서로에 대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길에서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 장면에서 흐르는 노래(‘굿바이 마이 러브 再見, 我的愛人’)가 애절합니다.
뉴욕에서 등려군의 사망 소식을 들은 이교와 소군이 서로에 대한 생각을 하며 정처없이 걸을 때 나오는 노래(‘저 달이 내 마음을 대신해요 月亮代表我的心’)는 감미로운 슬픔입니다.
홍콩에서 소군의 자전거 뒤에 탄 이교가 흥얼거리는 노래(‘첨밀밀 甛蜜蜜’)는 정말 달콤합니다. 뉴욕 가전제품 앞에서 기적같이 다시 만난 이교와 소군의 미소와 함께 등려군의 목소리는 그 동안의 이별과 아픔에 대한 따뜻한 선물입니다.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여명이 다시 한 번 부릅니다.

개혁과 개방의 바람 속에 대륙에서 홍콩으로, 홍콩에서 뉴욕으로 떠도는 중국 젊은이들의 인생과 사랑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리고 있는 영화 ‘첨밀밀’은 인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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