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얼이 드나드는 굴(窟)이
얼굴이라는 데
얼이 빠진 굴은 무슨 굴일까?
안으로 충실해지면
밖으로 드러난다는 데
겉만 치장한다고 향기가 날까?
소산
<관련고전>
o 相好不如身好 身好不如心好(『麻衣相書』)
상호불여신호 신호불여심호(『마의상서』)
얼굴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니라
자신의 용모에 관심을 갖는 것은 동서고금이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공통된 현상이다. 하지만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현상이 지나쳐 거의 병적인 지경에 이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과연 무엇인가?
위의 얘기는 많은 사람들이 백범 김구 선생의 말씀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당(唐)나라 때 마의선인(麻衣仙人)이 지었다는 『마의상서麻衣相書』라는 관상학 책의 끝 부분에 나오는 말이다.
마의선인이 이 책을 다 완성했을 무렵, 지나가던 한 청년을 만났다. 그 청년의 상을 보니 죽음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얼마 못살 상이어서, 한참 고민을 하다 할 수 없이 사실대로 말해 주었다. 그 말을 들은청년이 실망하여 길을 가던 중 수많은 개미떼가 냇물에 휩쓸려 가지 않으려고 나뭇잎에 매달려 애쓰는 모습을 보고, 측은한 마음에 위험을 무릅쓰고 개미들을 구해 주었다. 며칠 후 마의선인이 이 청년을 다시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청년의 얼굴에 죽음의 그림자는 말끔히 걷히고, 아주 좋은 상으로 변해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의선인은 아뿔싸 가장 중요한 것을 빼먹었다고 생각하고, 책의 마지막에 위의 글을 적어 놓았다는 것이다.
관상학은 오랜 경험의 축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고 말 할 수는 없다. 다만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사주나 관상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가짐 내지는 마음 씀씀이에 달려있는 것이다.
『백범일지』에 보면 김구선생이 과거시험에 낙방하고 집에 돌아와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부모님이 풍수나 관상이라도 공부하면 먹고 살 수 있지 않겠냐고 권유했단다. 그래서 김구선생은 이 『마의상서』를 열심히 공부하면서 자신의 관상을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자신의 상(相)은 천하고 가난하고 흉한 상이어서 도무지 귀하게 될 달상(達相)이 아니더란다. 그래서 세상 살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 이 책의 마지막 구절 즉 “相好不如身好 身好不如心好”라는 말을 보고는 결심했다. 나는 비록 관상이 좋은 호상인(好相人)은 아니지만 열심히 수양을 해서 마음이 좋은 호심인(好心人)이 되자고 말이다. 그리하여 어차피 험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뭔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뜻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단다. 백범 김구선생은 비록 험난한 일생을 살았지만 우리 근대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되지 않았는가?
우리가 용모에 이토록 신경을 쓰는 이유는 외모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 풍토에도 원인이 있다. 요즘 경제난으로 구직이 어려운 대학생들 사이에 취업성형 내지는 관상성형까지 유행된다고 하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맹자(孟子)는 “안으로 충실한 것을 아름다움이라 한다.”(充實之謂美)라고 했다. 밖을 아무리 뜯어 고쳐도 안으로 성실한 마음과 고매한 인격을 채우고 있지 못하면 결코 아름답지 않다. 아니 오히려 천박하고 역겹게 느껴질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용모를 아름답게 가꾸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성형수술을 하거나 화장술을 통해서가 아니라, 밝은 마음을 갖고, 마음을 착하게 쓰는 훈련을 수양을 통해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말의 ‘얼굴’이란 말은 ‘얼이 드나드는 굴’ 즉, ‘영혼이 소통하는 통로’라는 뜻이라고도 한다. 우리 모두 인격의 향기와 영혼의 아름다움이 스며 나오는 그런 얼굴들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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