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후에 찾아오는 헤어짐, 그게 끝이라고 믿었는데 우연의 법칙은 사람의 인연을 그렇게 단순하게 결론짓도록 내버려두질 않는다. 만나고 싶지 않지만 또 대면하게 된다. 특히나 악연일수록 더 그렇다. 그래서 벗어나려고, 피하려고 애쓰는데도 삶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악순환의 연결고리는 언제나 삶을 원점으로 회기 시켜 놓고 만다.
하지만 사랑의 힘은 아직 강하다. 마치 덫에 걸린 듯 빠져 나올 수 없는, 출발부터 잘못된 원점에서도 그것은 용하게 새 삶으로 향하는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인생은 살아 볼 만하다고 하는 게 아닐까? 뭐, 아직은 영화에서 마주한 사랑의 힘을 현실에서도 믿고 싶다.
'타짜-신의 손'에서처럼.......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과연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지 알 수 없는 정글 같은 그 곳.
때로 먹잇감이 되고, 사냥꾼이 되기도 하는 대길(최승현). 인생 한 방을 노리며 투신한(!) 도박판에서 그는 사랑과 배신, 음모와 복수를 경험하고 배운다. 그곳에서 조금만 비껴가면 새 인생이 펼쳐질 것만 같은데 그 길은 멀기만 하다. 아군인 듯 위장한 적군의 모습, 살기가 가득한 도박판에서 만난 악연들은 부활의 힘을 가진 듯 완전히 사라졌다고 믿는 그 순간 다시 그 곳에 나타난다. 만나고 싶지 않은 모습으로 다시 마주하게 된 인연 미나(신세경).
자신의 생명을 대신해 준 그녀를 위해 대길은 모든 것을 걸어 도박판의 밑바닥 인생으로 전락한 미나를 구해준다. 하지만 돌고 도는 악연의 고리는 끊어질 줄을 모른다.
행복할 권리조차 도박판에 저당 잡히고만 인생들. 사고와 상처, 죽음... 인생 한 방을 기대했던 그 곳에서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의 말로는 그 이상 일 수 없다. 인생 한 방은 곧 인생의 추락과 맞닿아 있는 것이리라. 음모와 술수가 난무하는 도박판에서는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
대길이 그렇게 존경했던 스승 고광렬(유해진)도, 타짜로 유명세를 떨친 아귀(김윤석)도, 마지막 도박판에서 어마어마하게 큰돈을 갖게 된 허광철(김인권)의 인생도 모두 상처와 후회로 점철된 비참한 삶일 뿐이다. 그 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도박판을 벗어나기 위해 도박판에서 맴돌아야만 했던 대길과 미나. 그래도 사랑이라는 두 사람의 목표에는 배신과 복수가 존재하지 않으니, 돈의 힘보다는 역시 사랑의 힘이 절대적이다.(그렇게 믿고 싶다) 마지막 장면에서 대길이 하얀 눈밭에 빨간 화투짝을 내던진 것은 미나와 함께 새 삶으로 향하기 위한 고해성사가 아니었을까?
영화 '타짜-신의 손'은 전작인 '타짜'와 도박이라는 같은 소재를 사용 했을 뿐 전혀 다른 스타일을 보여줌으로써 오락영화로 재탄생했다.
'타짜-신의 손'은 하나의 장르로 규정짓기 힘들다. 어두운 하우스(도박장)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느와르 장르인 듯 하지만 대길과 미나의 로맨스를 중심으로 영화는 액션과 코미디까지 넘나든다. 이미 '과속 스캔들'과 '써니'를 통해 재기발랄한 연출력을 선보인 강형철 감독 특유의 개성이, 마치 보여주고 싶은 모든 것을 다 보여주겠다는 듯 스크린에 넘쳐난다.
영화는 만화가 원작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듯 곳곳에 애니메이션 기법을 사용해 경쾌함을 준다. 애니메이션으로 연출된 싸움 장면 이후 고광렬의 죽음이 비장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편집은 강형철 감독의 최대 강점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판타스틱하다. 시 ·공간을 뛰어넘는 유려한 편집 기법은 관객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감독은 '써니'에서 선보인 기술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킨 노련함을 보인다. 하지만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불편하게 연출된 장면들(예를 들어 하우스로 노래를 부르며 줄 맞춰 들어가는 남녀들의 모습 등)은 억지스럽다.
전작에 비해 '타짜-신의 손'에는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던가! 그 많은 등장인물들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은 것은 이 영화의 최대 단점이다. 인물들 모두 반전이라는 연결고리로 엮어져 배신과 음모, 복수를 반복한다는 점은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차츰 떨어뜨린다. 반전에 반전, 그리고 또 반전 - 이처럼 거듭되는 무한 반전은 영화가 줄 수 있는 임팩트를 약화시킨다. 147분이라는 러닝 타임이 부담스러운 이유다.
배우들이 전작보다 한 층 더 젊어진 탓일까? 주인공인 최승현과 신세경의 스크린 장악력은 아쉽다. 백치미와 섹시미를 오가며 그동안의 연기 스펙트럼과는 다른 행보를 보인 우사장 역의 이하늬(의) 변신은 새롭기는 하지만 아직 농익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성장 가능성이 큰 배우들이기에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전작이 주는 향수를 위해 캐스팅 된 배우, 고광렬 역의 유해진과 아귀 역의 김윤석은 관객의 기다림을 전혀 무색하지 않게 한다. 유해진 특유의 유쾌한 코믹연기와 김윤석의 중량감 있는 카리스마는 젊은 배우들의 연기에 힘을 보태주기에 충분하다.
너무 “오락”에 치중한 나머지 기억에 남는 대사가 없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즐거움과 볼거리, 이 두 가지에 만족했다면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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