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카트’를 보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스포츠 / 서 기찬 / 2014-10-26 22:40:35


영화 '카트'가 다음 달 13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 ´카트´ 포스터, 뉴스1) 영화 '카트'가 다음 달 13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 ´카트´ 포스터, 뉴스1)


[뉴스1] 사회 현실 반영 영화의 최대 미덕은 무엇일까.

이는 단연 이웃에 대한 ‘무관심’을 반성하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일 것이다. 뉴스를 통해서만 접했던 일련의 사건들이 영화로 재구성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영향력을 지닌다. 나름의 사연을 가진 캐릭터가 비극적 상황에 놓이게 되는 순간, 피부에 와닿는 건 사태의 심각성이다. 영화 속 인물의 감정에 대입해 체험하게 되는 뉴스 속 사건은 이제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고로 사회 현실 반영 영화는 비로소 우리 사회의 민낯과 가까이 마주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통로와도 같은 셈이다.

영화 ‘카트’(감독 부지영)는 사회 현실 반영 영화의 미덕을 제대로 갖춘 작품이다. 대형마트의 비정규직 직원들이 부당해고를 당한 이후 이에 맞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배우 염정아와 문정희를 비롯해 김영애, 김강우, 도경수(엑소 디오), 황정민, 천우희, 이승준 등이 출연한다.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로 부산국제영화제, 까롤로바라국제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도쿄국제여성영화제에 초청받았던 부지영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제작 담당은 ‘접속’, ‘공동경비구역 JSA’, ‘건축학개론’ 등을 만든 명필름이다.

‘카트’에서 관객들이 몰입할 제1의 인물은 단연 선희(염정아 분)다. 선희는 지난 5년 간 야근 수당 한 번 제대로 챙겨 받지 못하고 군말 없이 묵묵히 일해 온 인물. 그런 그가 그토록 꿈에 그리던 정규직 전환을 눈앞에 두고 일방적인 계약 해지 통보를 받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회사의 부당한 처우에도 불평 한 번 내지 못하고 파리 목숨을 부지하기 급급한 우리 모습과 무관하지 않다. 노조 위원이 된 후에도 사회에 제 목소리를 내기를 두려워하는 선희의 모습에는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 투영돼 있다.



다음 달 13일 개봉되는 영화 '카트'는 대형마트의 비정규직 직원들이 부당해고를 당한 이후 이에 맞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 '카트' 스틸,뉴스1) 다음 달 13일 개봉되는 영화 '카트'는 대형마트의 비정규직 직원들이 부당해고를 당한 이후 이에 맞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 '카트' 스틸,뉴스1)


선희 이외에도 ‘더 마트’의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카메라는 이들의 사연에 깊숙이 개입하지 않는다. 영화가 다소 담담하고 담백한 시선에서 그려지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싱글맘 혜미(문정희 분)의 이야기도 함께 전개될 법도 하지만 영화는 선희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선희가 파업을 시작하면서 그의 아들 태영(도경수 분)과의 갈등도 깊어지는데 이는 파업이 실제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 것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일터를 되찾기 위해 희생되는 것은 피고용자들 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에게도 힘겨운 과정이기도 하다.

‘카트’는 분명 계몽과 고발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카트’는 지난 2007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랜드의 홈에버 부당해고 사건을 얼개로 할 뿐 서사는 선희의 사연과 마트 여성 직원들의 눈물겨운 동료애를 그리며 진행된다. 부당 해고를 당한 후 회사의 냉담한 반응과 용역 깡패들과의 투쟁 가운데서도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따스한 한줄기 희망이 영화에서 새어나온다. 분노를 지나치게 강요하는 투쟁적인 비주류 노동 영화가 아니라 상업 영화로서의 경쟁력도 갖춘 영화라고 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카트’는 영화 외적 가치가 큰 작품이다. 한국 상업영화 최초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다뤘기 때문이다. 주류를 빗겨가는 비정규직 노동에 관한 소재가 스크린에 담긴다는 시도 자체가 큰 의미를 내포한다. 임금불평등을 겪고 있는 비정규직 인구가 823만 명이라는 수치를 웃돌고 있는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인만큼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실화를 모티브로 했다는 점이 비정규직 노동 문제과 관련한 여론 환기에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영화 내적 가치도 나무랄 데 없을 만큼 훌륭하다. 어디 하나 튀거나 어긋나는 장면이 없으며 미적 완성도도 높다. 유려한 카메라 워킹과 그 움직임 내에서 폭넓은 그림을 담으려는 시도도 돋보인다. 여기에 배우들의 열연이 보태지며 메시지와 감정 전달력도 강화된다. 채도를 뺀 푸른 톤의 화면은 냉담한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특히 마트를 내려다보는 부감샷은 ‘왕’인 손님에게 시종일관 웃으며 바코드를 기계적으로 찍어야 하는 마트 직원들의 비애를 각인시킨다.

“우리가 바라는 건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냥 저희 좀 봐달라는 거다. 투명인간 취급하지 말아 달라는 말이다”는 선희의 외침은 ‘카트’가 던지는 궁극적인 메시지와 맞닿아있다. 비정규직 노동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어디선가도 선희와 더 마트 직원의 공허한 외침이 울리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지금 당신의 이웃은 안녕한지 한 번 돌아보라. 다음 달 1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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