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톡] 인터스텔라 - 시공을 초월한 불변의 진리

권상희의 영화톡 수다톡 / 권상희 영화 칼럼니스트 / 2015-01-19 13:16:00
위기가 찾아 온 지구에서 사람들은 제대로 숨쉬기 조차 힘들다. 거대한 모래바람은 삶을 황폐화 시키고, 그곳에서 희망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구의 미래를 예견한 많은 영화들은 이처럼 이구동성으로 비관적인 허구의 세계를 스크린에 옮겨놓는다. 마치 우리에게 경고라도 하듯이.
그래서 때로 SF장르가 부담스럽기도 하다. 우주라는 공간으로의 편입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이질감을 준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는 배경이 주는 이질감을 인간의 감성으로 상쇄시킨다. 그리고 동화시킨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의 힘이자 매력이다.

인터스텔라 인터스텔라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아무것도 보장된 것이 없는 웜홀에 몸을 던지는 쿠퍼.(매튜 맥커너히)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없는 지구에서 자식을 구하기 위한 그의 목표는 인류의 생존이라는 거대 명제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지구 밖에 내던져진 이들에게 우주는 그들이 찾고자 하는 희망의 공간이 되어주지 못한다. 그곳은 피폐해진 삶의 터전만큼이나 황량할 뿐이다.

새로운 행성을 찾는 과정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곳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 그것은 바로 지구에서 보내 온 자식들의 영상을 지켜보는 일이다. 나이 들어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변화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중력으로 인해 떠나올 때와 똑같은 모습인 채로 봐야만 하는 쿠퍼에게 그것은 크나큰 슬픔이다. 그렇게나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우주에서 찾으려던 희망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것만 같다. 만질 수도, 안을 수도 없는 현실, 그래도 이들 가족에게는 언젠가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다림이, 믿음이 있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과학자들이 매달린 중력의 문제, 이는 물리적인 영역, 이성의 힘 그 이상을 필요로 한다. 쿠퍼가 떠나기 전에 딸 머피(제시카 차스테인)에게 준 시계는 과거의 머피와 현재의 머피, 그리고 블랙홀 속 5차원의 시간과 공간에 있는 쿠퍼를 연결시켜준다.
결코 맞닿을 수 없는 불가해한 영역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느낀다. 아빠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강력한 믿음이, 가족을 향한 사랑이라는 시공을 초월한 절대적인 감성이 마침내 중력의 비밀을 풀어내는 열쇠가 되어준다.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마법의 힘을 발휘한다.

죽음을 앞둔 노인의 모습으로 다시 만난 딸과 여전히 젊은 아빠의 모습은 생경한 풍경이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머피로 인해 토성 근처인 쿠퍼 스테이션에 머물게 된 인류의 모습은 참으로 다행스럽다. 다시 우주선을 타고 아멜리아(앤 헤서웨이)가 있는 에드먼드 행성으로 향하는 쿠퍼, 지구를 대신 할 새로운 행성의 발견을 예고하는 엔딩은 그래서 더 할 나위 없는 해피엔딩이다.

인터스텔라

웜홀, 상대성이론, 중력, 블랙홀 - 물리학적인 지식이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영화가 바로 인터스텔라다. 공부하게 만드는 영화, 이 불편한(!) 과정을 기꺼이 감수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이 천만을 넘어섰다. 할리우드에서와는 다른 뜨거운 반응, 그 이유는 스크린을 가득 채운 우주의 광활함도, 작가적 상상력의 발로인 5차원 공간에 대한 신비함도 아니다.

바로 시공을 초월한 가족애에 있다. 우주라는 차가운 공간 속에서 넘쳐나는 뜨거운 부성애에 비로소 관객은 열광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적인 정서이기도 하다. 단순히 울고 짜는 신파라고 치부하기에는 가슴 깊은 곳에서 어떤 울림 같은 것이 생겨남을 부인 할 수가 없다. 결코 이론이 될 수 없는 시공을 초월한 불변의 진리가 바로 사랑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과학은 그저 이것을 보여주기 위한 가장 지적이고 세련된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물론 감동을 자아내는 탄탄한 플롯뿐만 아니라 우주의 외부 공간을 흔히 사용하는 CG가 아닌 미니어처(미니어처로 만든 우주선의 무게가 무려 4.5t에 달한다고 한다)로 직접 제작을 했다든가, 디지털이 아닌 필름 촬영을 고수했다는 것은 가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이 영화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4년 동안 칼텍(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동생, 조나단 놀란의 노력에도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훌륭한 작품의 이면에는 작품만큼이나 대단한 인내심과 뚝심이 있었던 것이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가장 최첨단의 세계를 시각화한 영화 인터스텔라, 그 안의 감성 역시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여서 반갑다. 아마도 오랫동안 인터스텔라는 따뜻한 SF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권상희-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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