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농구의 레전드 천은숙이 한스타 연예인 농구를 통해 코트로 돌아왔다. 청소년국가대표부터국가대표선수까지 화려한 경력의 그가 불혹을넘긴 나이로 막내동생급의 연예인들과구슬땀을 흘린다.
천은숙은 1990년대 한국 여자농구의 르네상스를 열고 꽃을 활짝 피운 몇 안되는 전설 가운데 한 명이다. 전주원, 유영주, 정은순, 정선민 등과 함께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아를 넘어 세계무대에서한국을 빛낸 자랑스런 농구인이다. 그런 그가 '다문화 가정과 함께 하는' 한스타 연예인 농구 대잔치에 우먼프레스 팀 선수로화려했던 시절을 재현하고 있다.
대한농구협회 전임심판인 그는 지난 15일 대회 개막일W.PRESS(이하 우먼프레스)-더홀전엔 참가하지 못했다. 지방에서 열린 농구대회에 심판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그날 천은숙 없는 우먼프레스는더홀에 역전패를 당했다. 다 이겼던 경기를 막판에 내줬다. 그의 송곳같은 패스로 찔러주는 도움이 필요한 경기였다.
그가 농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농구선수였던 언니가 장난처럼 가르쳐준 농구에 그는 빠져들었다. 그렇게 재미있는 놀이가 없었다. 폼나는 레이업 등 농구 기술을 혼자 배우고 익혔다. 농구 잘하는 아이는 언니의 뒤를 이어 유니폼을 입게 된다.딸 둘을 모두운동시킬 수 없다는 완고한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며 그는 농구 명문 동주여중으로 진학했다.
군계일학의 중학시절을 마치고 그는 동일계열인 동주여상에 입학했다. 가드겸 포워드로 활약하며 필요할땐 센터까지 소화하는 전천후 선수로 우뚝 섰다. 골밑 돌파에 능했고 적중률 높은 3점슈터로 이름을 날렸다.2학년때 청소년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출전한 세계 청소년 농구대회 미국전에선 3점슛 9발을 적중시켜세계인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고교을 졸업한 88년그는 연고선수로 실업팀 코오롱에 입단해 전성기를 열기 시작한다. 그리고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과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수확해 조국에바쳤다. 당시 코오롱 정주현 감독은 미국 코치를 초청해 선진농구를 지도했다. 그리고 천은숙을 WNBA(미국여자프로농구)로 진출시키기로 하고 작업을 진행했다.
미국 애틀란타 올림픽이 있었던 1996년. 그는 그의 농구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과 아픔이 교차하는 사건을맞게 된다. 7월 국가대표선수로 올림픽 무대를 밟는 영광도 안았지만12월 28일 농구대잔치 현대팀과의 대결에서 오른쪽 아킬레스건이 완전히 끊기는중상을 입는다. 그해 마지막날 수술을 받았고 그는선수생명 최대 위기에 처했다.
96시즌 종료 후 WNBA 진출 약속이 물거품이 됐고 국가대표선수생활도 끝이 났다. 그는 수술 후 6개월간 재활하며 재기의 꿈을 다졌지만 97년 떠밀리듯 코오롱을 퇴단하고 이적동의서를 받았다. 그리고 일본 실업팀 덴소에서 재활을 병행하는코치제의를 받고 바다를 건넜다. 시즌 후 이번엔 대만에서 선수제의를 받았다.그는 꼴찌 팀을 결승까지 올려 준우승을 차지하는 능력을 발휘했다.그곳 주요 인사가 대만 귀화를 권유했지만 그는 귀국을 선택하고돌아왔다.
귀국 후 그는 신세계농구팀에 입단해 1년을 뛴뒤 2000년 창단한 금호생명으로 옮겨 코치가 아닌 매니저로 활동했다. 이후 그는 34의 나이로 만학의 길을 걷게 된다. 2003년 전남 목포의 대불대학교가 농구팀을 창단하며 그에게 플레잉코치를 제의했고 그는짐을 싸서 목포로 향했다.그는 학업과 함께 유소년농구 강사로 지도자의 길을 병행해 나간다. 2007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4년간 분당 청솔중학교 여자팀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그리고 2013년 대한농구협회 1급 심판자격증을 땄다.
그즈음 그는친한 선후배들과 하머니라는 이름의 여자농구팀을 만들어 활동했다.2008년 그 팀은 이름을 우먼프레스로 바꾸고 본격적으로각종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천은숙이 어떻게연예인 농구에 참가하게 됐는지 이제 이유가 밝혀졌다. 그는 우먼프레스 창단때 부터 선수였고 아직도 우먼프레스 소속이다.
2라운드 경기가 없었던 우먼프레스는 지난달 29일 레인보우스타즈(이하 레인보우)와 3라운드 경기를 가졌다. 1패의 우먼프레스에게2연승의 레인보우는벅찬 상태. 천은숙의 가세는 천군만마였다. 가드 천은숙은 넓은 시야로속공패스를 여러 차레 배달하고빠른 드리블로 골밑을 공략했다. 노장의 기량은 여전했으며 경험과 투혼도 살아있었다.그러나 신장과 체력에서 열세를 보여 팀은 아쉬운 패배를 당했다.
경기를 마친 천은숙은 레인보우 젊은 선수들의 거친 몸싸움을 패인으로 분석했다.팀의 전략에 대해 "3쿼터까지 점수차를 좁히고 4쿼터에 승부를 걸었다.막판에많이 따라가 역전도 가능했는데 3쿼터까지 점수가 너무 벌어져 어쩔수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앞으로 남은 경기에 대해선 "외곽포로는 한계가 있다. 팀 패턴에 따리 스크린 플레이나 커팅, 1대1 돌파 등 득점루트를 다양하게 가져가야 할 것같다"며 "진혼은 어려운 상대고 아띠나 스타즈전에 중점을 두겠다"고밝혔다. 그러나천은숙은 5일 4라운드 진혼전은 심판업무로 불가피하게 나올수 없게 됐다. 우먼프레스로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천은숙은 아직 미혼이다. 갸름하고 다소 이국적인 얼굴은 40대로 보기엔 믿을 수 없는 동안 미모다. 특별한 비결에 대해 그는 담담하게 '운동을 많이 해서' 라며 웃었다. 젊은 시절 남성팬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을 터. 결혼을 안한 이유를 묻자 "바쁘게 일을 해왔다. 그러다 보니 결혼이 절박하지 않았다"며 "못한거다"라고 답했다.
연얘는 한 두번 했다는 천은숙은 "결혼할 마음은 있었는데 결혼까지 할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을 못만난 것"이라며 "인연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어 "난 독신주의자는 아니다. 다만 지금의 생활이 편하고 좋다. 기회가 되면 하겠다는 마음은 있다"며 여운을 남겼다.
선수로 지도자로 WKBL TV해설자로 심판으로 농구를 떠나 살아온 삶이 없는 천은숙. 지금도 1인 3역의 바쁜 일상을 사는 그에게 농구외 어떤 취미가 있을까. 그는 골프를 좀 배웠다고 했다. 그런데 이것저것 바빠 필드에는 아직 나가지 못했다고 했다. 누군가 머리를 올려줄 사람이 필요할 듯 보였다. 그리고 특히 그는 심판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많은듯 했다. 심판3년차인그는1년에 한 번 체력테스트를 받아야 하는데 꽤 강도가 높다고 말하며 요즘 테스트를 대비해 근력운동을 이 해 몸상태는 좋다고 근황을 전했다.
끝없이 자신을 갈고 닦으며 한국 농구를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려는 천은숙. 나이를 거꾸로 먹는듯 자신이 세운 목표를 하나씩 하나씩 이뤄가는 아름다운 그의 도전은 농구계의 소중한 교훈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한스타 연예인 농구대잔치는 4년째 연예인 야구대회를 운영해 온 한스타미디어와 MBC스포츠플러스가 공동으로 주최, 주관한다. 그리고 NH농협은행 용인시 지부와 하이병원, 초록뱀미디어, 영화사 비단길, 용인시 자원봉사센터, 용인시 농구연합회, 디어스, 명가김이 한스타 연예인 농구대잔치를 공동 후원한다.
한스타 연예인 농구대잔치 입장은 무료이나 티켓을 소지해야 한다. 티켓은 온오프믹스(http://onoffmix.com/event/40484) 에서 선착순 500명에 한하여 온라인으로 발행한다. 그리고 서울 상암동 소재 한스타미디어 사무실과 용인시청 체육진흥과, 용인시 각 구청 자치행정과, 용인시 체육회, NH농협은행 용인시 지부, NH농협은행 용인시청 출장소, NH농협은행 각 구청 출장소에서 1인당 2매씩 배부하고 있다. (문의 : 용인시 체육진흥과 031-324-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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