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선생님이 하라는데로 뭐든지 다 했구요.
또, 하지말라고 하면 안 했어요.
선생님한테 어울리는 여자가 될려구요.
그건 선생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전 선생님한테 제 인생을 모두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어요.
도대체 그런데 어떻게 저한테 그러실 수가 있어요?
제가 선생님한테 못 해드린게 뭐가 있어요?"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년, 감독: 홍상수)' 중에서 민재(조은숙) 의 말.
토속적인 때론 일상적인 소재로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 구효서의 <낯선 여름>(1994)이 원작입니다.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이지요. 효섭(김의성), 동우(박진성), 보경(이응경), 민재(조은숙) 등 네 남녀의 사랑과 불륜 그리고 허우적대는 삶의 조각들을 모은 작품입니다.
헛된 꿈을 꾸며 변두리 인생을 사는 네 남녀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렸습니다.
위 대사는 효섭을 짝사랑하는 민재가 효섭이 보경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내뱉는 대사입니다. 리얼하지요. 현실에서도 흔히 있을 수 있는.
카메라는 네 남녀의 시선에서 각각 바라보기도 하고 함께 어울리기도 합니다. 돼지도, 우물도 나오진 않습니다.
'삶'이란 껍데기 속의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지 못해 헤메고 방황하고 갈등하는 인간관계를 비꼽니다. 그러다 어이없는 죽음을 맞거나 삶으로부터 달아나는 인간들은 마치 식욕만으로 욕망을 채우다 우물에 빠진 돼지와 다를 바가 없지요.욕심, 욕망, 욕정으로 가득찬 인간은 돼지이고 우물은 삶의 함정을 말합니다. 사랑없는 결혼생활, 사랑의 의미조차 모르는 3류 작가, 그리고 여인을 사랑하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젊은이...산업화되고 자본화, 개인화 된 사회, 의사소통이 단절된 인간들의 뒤틀린 관계와 삶을 인간의 치부를 통해 자연스럽게 묘사합니다.
'홍상수 식 영화'의 시발입니다.
'홍상수 식 리얼리즘' 영화의 출발입니다.
저는 참 재밌게 보았고 요즘도 가끔 감상하지만 '지루하거나 무슨 이야긴지 잘 모르겠다'는 분들도 있더군요. 타인의 취향! 취향의 차이?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제17회 청룡영화상에서 신인감독상과 조은숙이 여우조연상을, 제27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타이거상을 받았습니다. 제42회 아시아태평양 영화제에서 최고신인상을, 제20회 황금촬영상 시상식에서 신인감독상과 김의성과 조은숙이 신인연기상을 받았고요. 제15회 밴쿠버영화제에서 용호상을, 제16회 한국영화평론가상에서 신인감독상과 음악상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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