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대사] "아름다운 귀신이 라인강에 살고 ..."- '비정성시'

인터뷰&칼럼 / 서 기찬 / 2015-12-04 17:49:11

[그 영화, 명대사] (33)

비정성시

"아름다운 귀신이 라인강에 살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어부들이 그 노래 소리에 심취해서 배가 암초에 부딪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대요"
- '비정성시(悲情城市, 1989, 감독: 허우샤우시엔)' 중에서.

1949년 대만, 임아록은 네 아들 중 유일하게 남은 셋째 아들 문량, 장손(큰아들 문웅의 아들)과 밥을 먹습니다. 성한 아들은 모두 죽거나 행방불명되고 미쳐버린 문량만 남았습니다. 미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대만 근대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또 하나의 의미로 임아록과 셋째 문량 그리고 손자, 3대가 둘러앉은 식탁 풍경은 아무리 혹독한 시련이 주어져도 민중은 살아남는 다는 것을 보여주지요.

'비정성시'는 1945년 일제에서 해방된 대만의 역사적 소용돌이속에서 한 가족이 겪는 비극을 그린 시대물입니다. 임아록의 네 아들은 성격과 직업은 다르지만 모두 격변에 희생돼 휘말려 죽거나 미쳐버립니다. 대만 뉴웨이브 선봉, 허우샤오시엔의 대표작으로 1947년 발생한 2·28사건을 조명합니다. 가족사와 아픈 대만 역사를 교차시킨 명품입니다.

2·28사건의 비공식적인 희생자 집계는 3만~4만명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대륙에서 건너온 국민당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에서 비롯된 사건이다 보니 대만인과 대륙인 사이의 감정적인 싸움으로 비화되고 이 과정에서 양쪽 다 억울하게 희생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소개한 대사가 나오는 장면은 이렇습니다.
문청(양조위)의 친구이자 관미의 오빠 관영은 지식인 청년들과 국민당 정권의 비리에 대해 규탄하고 군사 쿠데타를 역설합니다. 말을 못해 대화에 낄 수 없는 문청은 이들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는 조용히 뒤로 빠지지요. 그리고 턴테이블에 음반을 거는데 〈로렐라이 언덕〉의 연주곡입니다.문청을 좋아하는 관미는 문청이 사용하는 필담용 메모지에 노래의 유래에 대해 적어줍니다. 이 곡은 독일에서 전해지는 명곡으로, 라인 강에 사는 귀신의 노래 소리에 홀린 뱃사람들이 암초에 부딪혀 죽었다는 전설을 담은 곡이라고.

영화에서 가장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이 장면은 한편으론 매우 슬프고 안타까운 씬입니다. 듣지 못하는 문청은 사실 들을 수 없는 노래를 감상하고 있는 것이며, 관미가 전해주는 노래 내용도 영화의 스토리처럼 불행한 이야기입니다.주인공 문청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인물입니다. 극단적인 설정이긴 하나 대만의 민중을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부패한 정권에 탄압받고 착취당하지만 제대로 항의하지도 못한 채 억눌려 살아온 대만 민중의 처지가 문청과 똑같습니다.

허샤오시엔 감독은 한 장의 기념사진처럼 모든 장면을 담담하고 흥분하지 않고 철저하게 관찰자 시점으로 객관화합니다.
이런 앵글이 주는 감동은 일본의 통치에서 다시 대륙인들의 압제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대만인들의 고통에 대한 연민을 정직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불법과 무법으로 대만인들의 자유와 권리를 짓밟는 장개석 일당에 대한 분노, 아니 모든 독재집단에 대한 분노로 이어집니다.

26년 전의 젊은 양조위 눈빛 연기는 영화의 격을 한 단계 높일 정도로 일품입니다.



* 방송인 홍민희, 신지은과 함께하는 한스타-아프리카TV(http://afreeca.com/mjhanstar)가개국했습니다.


[ⓒ 한스타미디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