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칼럼] 영화 '해어화'가 던지는 슬픈 질문

손석한의 연예심리학 / 손석한 / 2016-04-27 10:58:55

제4장 ‘해어화’의 소율과 연희가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조선의 마지막 기생의 숨겨진 이야기를 담은 영화 ‘해어화(解語花)’가 상영 중이다. 해어화란 말을 알아듣는 꽃을 의미하는데, 이는 곧 기생을 뜻한다고 한다. 소율(한효주)와 연희(천우희)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배신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많은 영화가 그러하듯이 이 영화 또한 인간의 내면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고, 두 배우 모두 훌륭하게 배역을 소화해내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노래들도 무척 좋아서 관람 후 나도 모르게 노래 한 소절씩을 흥얼거릴 정도였다. 결론적으로 해어화는 비극 영화였다. 주인공 세 명 중에서 두 명이 죽고, 남은 한 명도 결코 행복하지 않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렇기에 필자는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를 특히 슬프게 만드는 몇 가지 질문을 발견했다.


첫째, 우정은 과연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가?
소율과 연희는 세상에 둘도 없는 단짝이요, 동무였다. 요새 말로 하면 ‘베프(베스트 프렌드)’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어릴 적 대성권번(경성의 기생학교)에서 함께 뛰놀고, 공부하며, 노래 부르며, 춤을 췄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어느 누구라도 의심하지 않을 만큼 강건했다. 적어도 윤우(유연석)가 그들 앞에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의 등장 이후 그들의 사이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소율에게 연정이 있었던 윤우의 등장에 연희는 그저 ‘내 소중한 동무의 연인이 나타났다’라는 정도의 태도를 취했다. 소율 역시 소중한 연희에게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윤우를 인사시켜 줬고, 이난영 선생님 자택 방문의 기쁨 역시 연희에게 나눠주려고 했다.
문제는 윤우가 단순한 남자친구 혹은 좋아하는 오라버니가 아닌 당대 최고의 작곡가라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노래를 좋아하고, 이난영 선생님의 노래에 흠뻑 빠져있는 사람들이었다. 비록 정가를 부르는 기생들이었지만, 마음속에서는 시대의 최신 흐름인 유행가를 멋지게 부르고 싶은 젊은 아가씨들이었던 것이다. 이른바 가수 지망생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시대의 아리랑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조선의 마음’을 부를 사람으로 연희가 선택되어졌다. 그것도 소율이 제공한 아주 우연한 기회 때문이었다. 따라서 소율의 정신적 충격은 엄청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자신을 사랑했던 윤우가 연희의 목소리에 반해서 점점 그녀에게 빠져들어 급기야 그녀와 키스를 나누는 순간을 목격했을 때 그녀는 거의 ‘트라우마’ 수준의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배신감은 분노로 바뀌었다. 조선 총독부의 경무국장(박성웅)을 찾아가서 가수가 되고 싶다며 몸을 바친 그녀는 이제 친구를 무너뜨리고, 더 나아가 연인을 몰락시켰다. 그녀는 연희에게 말했다. “네가 나의 모든 것들을 훔쳐 갔다.” 한편, 연희는 자신에게 다가서는 윤우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가 키스를 하는 순간 ‘이 남자가 내 친한 친구 소율의 연인이다’는 생각을 잊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그녀에게는 천재 작곡가의 모습이 더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녀는 소율에게 말했다. “나는 훔치지 않았어. 네가 스스로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야.”
그들의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 보자. 물질적으로 더 풍족했던 소율은 연희에게 레코드판을 선물했다. 또한 빼어난 미모와 함께 음악적으로 더 인정받았던 소율은 연희에게 이난영 선생님 자택 방문의 기쁨을 나눠줬다. 하지만 연희의 숨겨진 재능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소율은 연희의 노래 녹음이 끝난 후 도시락을 꺼내 주면서 대화의 주된 흐름에서 밀려났다. 또한 연희의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 꽃다발을 가져다주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면 우정은 기존의 관계, 즉 소율이가 보다 더 우위에 있으면서 연희가 이를 인정하고 보조해 주는 관계의 질이 유지될 때만 유효한 것은 아닌가? 이와 같은 현상은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간혹 발견된다. 어릴 적 B보다 공부를 더 잘 하고 뛰어났던 A가 훗날 어른이 되어 자신보다 더 성공한 B를 만났을 때 그들의 우정은 별로 순탄치 않을 수 있다. 완전한 평등 관계의 우정, 그리고 모든 것들을 공유하는 우정이 현실에서 거의 없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낀다.


둘째, 악마적 본성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인가?
소율은 처음부터 나쁘지 않았다. 영화가 끝난 다음에도 그녀가 과연 나쁜 사람인가 잠시 생각하게 만든다. 초반의 그녀는 수줍고, 겸손하고, 배려심도 많은 여성이었다. 질투의 감정도 별로 드러내지 않았다. ‘조선의 마음’을 친구에게 빼앗겼을 때도 그녀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기생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경무국장의 동침도 거부할 만큼 순수함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랬던 그녀의 인격이 갑자기 붕괴되었다. 악마적 본성이 일순간 드러났다. 경무국장을 찾아가서 그녀가 부탁한 첫 번째 내용은 ‘조선의 마음’을 발매 금지시킨 것이었다. 또한 윤우의 마음이 자신에게 있지 않음을 확인한 다음에는 그가 형무소에서 나오게끔 해 달라는 부탁을 철회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연희에게 친절한 표정과 말투로 윤우의 거짓 소식을 알리고, 그녀를 총독부 전담 가수라는 구렁텅이로 밀어 넣기까지 했다.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의 아픔을 계속 드러내서 그랬던 것일까? 관객의 입장에서 그녀가 밉기보다는 안타깝기조차 했다. 그렇다. 우리는 누군가를 끌어내리거나 짓밟을 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너무나 힘들어서 견딜 수가 없어.’라는 자기 합리화적인 생각으로 악마적 본성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지는 않은가? 이러한 현실이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영화 '해어화' 스틸 컷 중에서.

셋째, 사랑은 소유와 어떻게 다른가?
이 영화의 영화 제목은 ‘LOVE, LIES, 2015’다. 해석하자면 ‘사랑과 거짓말’이다. 실제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한효주 씨가 부르는 ‘사랑, 거즛말이’는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여운을 남긴다. 윤우의 소율에 대한 사랑이 사실 거짓말이었다고? 그렇다면 윤우의 연희에 대한 사랑은 사실이었을까? 설령 사실이었다고 해도 과연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소율은 윤우를 사랑했기에 그를 소유하려고 했다. 연희에게 윤우를 빼앗겼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다시 말해서 연희가 그를 훔쳐갔다고 인식했음이다. 소율은 자신의 노래가 인기를 끌지 못하자 작곡가 윤우를 데려올 것을 음반 제작자에게 주문했다. 또한 윤우에게 직접 자신만을 위한 노래를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다. 엄청난 소유욕이었다. 윤우의 연희에 대한 사랑 역시 그녀의 타고 난 목소리를 소유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연희의 윤우에 대한 사랑은 어쩌면 그의 천재적인 작곡 능력을 소유하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또는 그녀)의 외모, 재능, 돈, 명예, 권력 등을 얻고자 함이 아닌지 그래서 그것들을 소유하기 위함이 아닌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이것이 세 번째 슬픔이었다.


넷째, 권력은 우리의 이성을 어디까지 마비시키는가?
어린 소녀 연희가 아빠의 빚 대신에 대성권번으로 팔려왔다. 자신의 노름빚을 갚고자 딸을 파는 아빠와 그로부터 어린 연희를 사는 산월(장영남)과 사무장(이한위)은 지금 우리의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아빠의 권력이 어린 연희의 인생을 바꿔놓은 셈이었다. 경무국장으로부터 환심을 얻기 위해 자신의 딸에게 최선을 다해서 꼭 그의 마음을 사로잡으라고 하며, 심지어 딸의 몸을 바치고자 하는 엄마 역시 권력 앞에서 이성이 마비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소율은 스스로 권력을 찾아 나섰다. 경무국장의 애인이 된 후 그녀의 이성이 마비되었고, 악마적인 행동이 본격화되었다.
‘창법 미숙’이라는 어불성설의 이유로 일본 경찰들이 음반들을 모두 없애는 비이성적인 장면이 고스란히 나올 때는 어이가 없었다. 한편, 그녀의 노래를 지도하는 작곡가가 “도저히 안 되겠다. 당신은 정가가 어울린다.”라면서 그만 두려고 할 때 음반 제작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도 아는데 경무국장의 애인인데 어떻게 하겠어.” 1990년대 공사현장에서 ‘조선의 마음’ 음반이 발견되자 잊힌 가수 서연희를 방송국에서 찾았다. 이때 늙은 소율은 자신을 서연희라고 밝힌 후 직접 ‘조선의 마음’을 부르기까지 했다. 그녀는 서연희에 대한 속죄의 마음으로 서연희를 더욱 빛나게 하려고 했던 것일까, 아니면 천재 가수 서연희의 명성을 가로 채고자 했던 권력욕이 발동했던 것일까? 여하튼 다른 사람을 사칭한 것은 분명한 사기요, 나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으니 비록 서연희가 죽었지만 살아있는 정소율을 이긴 것이었다. 그들의 슬픈 우정은 그렇게 결말을 맺고 있었다. 마지막 슬픔이었다.


해어화는 보는 이들을 슬프고 안타깝게 만든다. 일제 강점기의 울분과 설움은 물론 시대적 변화에 의한 특정 직업의 몰락도 담고 있다. 그것보다 더 씁쓸한 것은 ‘우리는 과연 정소율을 얼마나 악인으로 봐야 하는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글: 손석한(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의학박사, 연세신경정신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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