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명대사] (53)
“가엽고도 가엽고나... 가짜한테 맘을 뺏기다니”
- 영화 ‘아가씨(2016, 감독: 박찬욱)’ 중에서 하녀 숙희의 독백.
장미 꽃잎이 뿌려진 탕 안에서 아가씨 히데코(김민희)가 목욕을 합니다. 막대사랑을 빨면서.
하녀 숙희(김태리)는 아가씨 바로 옆에 앉아 순서에 따라 각종 향유와 꽃잎 등을 차례로 뿌려줍니다. 아가씨를 바라보면서.
막대사탕을 빨던 아가씨가 갑자기 통증을 느끼는 듯한 표정을 짓자 하녀 숙희가 묻습니다.
“아가씨, 어디 불편하신가요?”
“응, 날카로운 이에 가끔 상처가......”
아가씨의 대답에 하녀 숙희는 잠시 어딜 다녀오더니 아가씨의 모난 이를 갈아줍니다. 한창 육체적으로 성숙한 아름다운 두 처녀가 눈부처를 할 정도로 가까이 있습니다. 눈부처란 상대방의 눈동자 속에 제 모습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서로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 쉽게 눈부처를 할 수가 없지요. 혹시 눈부처 해본 사람, 생각나나요?
아가씨의 입 안에 손가락을 넣어 이를 갈아주는 하녀는 아가씨의 숨소리를 듣고 벗은 육체에서 풍기는 향을 느낍니다. 그리고 눈부처까지. 벌거벗은 아가씨와 그 아가씨를 바라보며 입 안에 손가락을 담은 하녀의 모습은 참 에로틱합니다. 동성애 영화임을 처음으로 알리는 감독의 사인입니다. 소개된 대사는 아가씨의 유산을 위해 거짓 사랑과 작업을 하는 사기꾼 백작(하정우)에게 넘어가는 아가씨를 본 하녀 숙희의 안타까운 독백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지난 5월 2016 칸느 영화제에서 영화 ‘아가씨’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원작소설 <핑거 스미스>를 읽다보면 초반쯤에 하녀가 아가씨의 이를 갈아주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 장면을 영화로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이를 갈 때 나는 아주 미세한 소리, 바짝 가까이 있으니 아가씨 몸에서 나는 향과 숨소리, 공기의 움직임 등을 영상으로 담는다면 문자로 읽을 때보다 얼마나 생생하게 살아날까, 막 상상이 됐습니다. 그 대목 때문에 영화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영화 ‘아가씨’의 원작은 영국 작가 사라 워터스의 <핑거 스미스>(국내 출판은 2006, 열린책들)입니다. 소설은 ‘레즈비언 역사 미스터리물’입니다. 소매치기들의 품에서 자라난 아이와 출생의 비밀, 부잣집 상속녀의 유산 상속을 노리는 사기꾼들의 모습을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흥미진진하게 풀어냈습니다. 영화 ‘아가씨’의 기본 스토리 역시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칸느에서 영화 ‘아가씨’를 마주한 외신기자들은 몇 가지 특징으로 작품을 평가했습니다. 첫째, 적나라한 동성애 코드의 유혹, 둘째, 하녀와 아가씨의 다중 시점의 반전, 셋째, 1930년대 조선과 일본의 기득권 남성들의 천박한 변태 기질, 넷째, ‘친절한 금자씨’ ‘올드보이’를 만든 박찬욱 답지 않은 절제된 폭력이 바로 그것입니다. 손가락 절단 정도?
러닝타임 144분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몰두하게 한 스토리와 구성도 돋보였지만 특히 김민희의 재발견과 김태리의 가능성은 영화 보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두 여배우가 내뿜는 섹슈얼리티도 인상적이었지만 김민희 아름다움과 표정 연기, 새내기 배우 김태리의 도발적인 데뷔가 반가웠습니다. 하정우와 조진웅의 연기는 두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다만 ‘박찬욱 영화’, ‘박찬욱 스러운’것, 동성애에 반감이 있는 영화 팬들은 아예 안 보시는 게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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