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칼럼] 정신과 치료 꺼리는 연예인들

손석한의 연예심리학 / 손석한 / 2016-09-20 11:09:11

제7장 연예인의 정신건강


정형돈 씨가 지난 10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무한상사'에 깜짝 등장해 복귀 가능성의 희망을 봤다. 그는 쓰러져서 사경을 헤매는 유 부장(유재석)을 바라보며 응원하는 내레이션과 함께 등장했다. "부장님 힘내. 지금은 고통스럽고 힘겨워도 이겨내셔야 합니다. 그리고 빨리 회복하셔서 다 같이 웃으면서 꼭 다시 만나요"라는 말을 남겼다. 이와 같은 말은 사실 그가 자기 자신한테도 하고자 했던 말이 아니었을까? 잘 알려진 대로 그는 공황장애가 악화되어 방송 활동을 중단했다. 그랬던 그가 이제 치료를 잘 받고 매우 안정된 상태로 돌아간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더 없이 반가운 출연이었고, 누구보다도 더 크고 열렬하게 그의 복귀를 희망한다. 정신과적 질병 또는 증상을 앓았다고 해서 사회적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 전혀 없음을 이제부터 그가 보여주기를 바란다. 물론 이경규 씨와 김장훈 씨도 공항장애를 앓았다고 밝힌 바 있었고,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기에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과 감동을 남겨주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정신과적 증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심한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증상을 드러내지 않고 쉬쉬 하면서 혼자서 끙끙 앓다가 병을 더 키우는 경우도 무척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적 주목을 받는 유명 연예인이 정신과적 진단과 치료를 숨기지 않고, 더 나아가 열심히 치료를 받으면서 훌륭하게 사회적 활동을 이어나간다면 현재의 정신과 환자들은 물론이려니와 잠재적인 환자들에게도 큰 희망과 용기를 불러 넣어줄 수 있다.


최근에 필자는 참으로 황당하면서도 안타까운 경험을 했다. 비교적 꽤 알려진 연예인이 정신과 진료를 원한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진료 시간이었다. 그가 원하는 시간은 통상적인 진료 시간이 끝난 후였다. 더욱 더 곤란했던 것은 간호사를 비롯한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다음에 필자 혼자 남은 채 진료받기를 희망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대로 해줬다. 다행스럽게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는 주로 상담이 먼저 이루어지고, 그런 다음에 필요에 따라서 약물처방이 덧붙여지기 때문에 의사인 필자 혼자서 못 할 이유가 없었다. 무사히 진료를 마친 후 필자는 환자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유명 연예인이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이 신경 쓰이지요?” 이와 같은 질문에 그는 대답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저는 정말 끝입니다.” 이해는 하면서도 무척 씁쓸하고 안타까운 그의 말이 필자의 가슴을 짓눌렀다.


연예인들은 정신건강에 취약할 가능성이 크다. 일단 안정적인 직업이 아니고, 대중의 인기로 먹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현재 인기가 있는 사람은 지금의 인기가 유지될까 늘 전전긍긍하고, 별로 유명하지 않은 사람은 언제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혹은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고 초조해지기까지 하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직급이 올라가거나 경력이 쌓이는 일반 직장인들과 다르게 선후배들끼리도 캐스팅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고, 변덕스런 대중의 기호에 따라 자신의 지위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현실이다.


인기가 절정에 이르고 정상급 연예인 대접을 받던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그와 같은 대접을 받지 못하면 ‘상실’ 반응이 올 수 있고, 스캔들이나 악성댓글 등으로 위기의 순간을 맞은 사람은 자신이 영영 회복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한다. ‘상실’의 감정이 지속되면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고, ‘두려움’이 지속되면 공황장애, 강박장애, 사회공포증(또는 대인기피증) 등의 불안장애로 발전할 수 있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하거나 중간에 자꾸 깨는 등의 불면증도 많이 동반된다.


그런데 많은 연예인들이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내지는 사회적 시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적절한 시기에 병원을 방문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조차도 연예인이기 때문에 겪는 대가라고나 할까? 물론 일반인들도 정신과 진료를 드러내 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병원 대기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신경 쓰여서 병원을 가지 못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연예인들은 이러한 제약 때문에 병원에 와서 제대로 된 진료조차 받지 못하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어떤 사람은 매니저나 지인이 대신 병원을 가서 수면제 정도만을 처방받아오고, 그것을 복용한다고 한다. 기저에 있는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에 맞는 적절한 처방을 받지 못하고, 그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불면증 치료제인 수면제만 복용하면서 병을 키우기도 한다. 수면제에 대한 내성이 생겨서 수면제 남용이나 의존 상태로 빠지는 것은 일종의 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연예인만을 위한 정신과 병·의원의 설립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러한 일이 생긴다면, 아마 수많은 팬들과 파파리치들이 그 병원 앞에 장사진을 치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누가 오는지 살펴볼 것 같기도 하다. 따라서 정면 돌파해야 한다. 연예인도 사람이다. 연예인도 대한민국 국민이요, 시민, 군민, 구민, 읍민이다. 따라서 마음이 아프면 정신과 병·의원을 찾아가기를 바란다. 혹시 그곳 대기실에서 다른 환자나 보호자를 만나면 서로 인사하면서 동병상련을 얘기하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투병 의지를 불태우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들 속에서 웃고, 울고, 아프고, 고치는 연예인이야말로 대중들의 사랑을 영원히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글: 손석한(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의학박사, 연세신경정신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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