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1980년대 한국 문단을 풍미하던 ‘청년 문학’의 아이콘이었던 작가 최인호 여섯번째 유고집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가 나왔다. (여백미디어) |
출판사가 공개한 최인호 작가의 생전 모습. 출판사 정원 위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항암 투병 중에 가래침을 뱉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여백미디어) |
[한스타=서기찬 기자] 지난 2013년 침샘암으로 세상과 이별한 작가 최인호의 여섯번째 유작,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여백미디어)가 발간됐다.
최인호는 사후 4년간 5권의 책을 남겼다. 그가 평소 집필실처럼 드나들었던 출판사 여백미디어는 유고집 ‘눈물’을 비롯해 ‘나의 딸의 딸’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나는 나를 기억한다 1, 2’ 등을 펴냈다.
6번째 유작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는 최인호가 20대부터 60대까지 쓴 에세이 39편을 모은 것으로 총 4부로 구성됐다. 1부는 작가의 의식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순수 에세이, 2부는 역사에 관한 이야기, 3부는 천재에 관한 글, 그리고 4부는 작가로서 가졌던 문학에 대한 단상을 담고 있다.
책의 제목은 3부에서 따왔다. 최인호는 천재 예술가들이 홀대받는 사회를 안타까워했다. 특히 일제강점기 최고의 화가 이인성(1912∼1950)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인성은 1929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이후 강렬한 필법으로 토속적 색조미를 강조해 ‘천재 화가’로 주목받던 인물이다. 그러나 6·25 전쟁 중 술에 취해 귀가하다가 검문 경찰관의 어이없는 총기 오발 사고로 사망했다. 최인호는 “일본인의 눈을 놀라게 했던 이인성의 미술적 재능이 총 한 방에 죽고 말았다. 왜 우리는 그들이 죽은 다음에야 추모하는가. 그들에게 머리 숙여 속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인호도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문재(文才)를 드러내 ‘천재’로 통했다. 그러나 화를 잘 내는 성급한 성격이 늘 문제였다. 그는 “천재를 가늠하는 척도는 곧 인품이다. 인품이 풍기는 재능을 가졌을 때 우리는 그를 진정한 천재라고 부른다”며 “그러므로 나는 천재가 아니다”고 자신을 낮췄다.
1부 ‘젊은이들은 속지 않는다’에선 1970년대 청년문화를 사랑했던 최인호를 만날 수 있다. 그는 체면만 차리는 예술가를 혐오했다.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려 애썼다. 그는 1974년 4월 14일 ‘이장희 리사이틀’을 찾아갔던 일화를 소개한다. 그는 “가수는 왠지 속물처럼 여겨지는 고정관념으로 그들을 타기(唾棄·업신여김)해서는 안 된다”며 “선생님의 자(尺)로 젊은이들을 재지 말라”고 일침한다.
책에는 없지만 출판사가 별도의 자료에서 공개한 최인호의 기도하는 사진은 작가의 처절했던 투병과 창작 의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가 운명하기 10일 전의 모습이다. 출판사 정원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은 기도가 아니다. 수차례의 항암치료로 식도가 섬유질화돼 그냥 앉아서는 목에 걸린 가래를 뱉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렇게 통곡하듯 엎드려서 가래를 토해냈다는 게 출판사의 설명. 책에는 그 사진 대신 똑같은 자세로 기도 중인 모습을 그린 조순호 화가의 ‘기도’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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